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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속세상]서미라의 ‘잔설’
어두운 시절, 대나무의 절개가 빛나다
변길현
기사 게재일 : 2013-12-02 06:00:00
▲ 서미라 작, `잔설’, 150×400cm, 캔버스에 유채, 2013.
 소동파(1037-1101)는 북송(北宋, 960-1126) 시대 사람이다. 중국 뿐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서는 대문호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살았던 북송은 소위 중원(中原)이라 일컬어지는 카이펑(開封)에 도읍하여 과거제도를 확립하고 문치주의 시대를 열어 문화의 꽃을 피운 시기로 기록된다. (이 시기에 한반도는 고려가 통치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도 신법파와 구법파가 대립하여, 6대 황제 신종이 왕안석을 등용하여 영세농민을 보호하고 대상인·대지주의 억제를 목표로 국정개혁을 하려 하였으나, 지주·상인·관료 등 기득권 계층인 구법파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신종이 죽고 철종(1085-1100)이 즉위하면서 신법파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신법파가 집권하면 신법파 관료가 득세하고 구법파가 집권하면 구법파 관료가 득세하는 식이었다.

 이 코미디 같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정치 상황을 일찍이 소동파 선생께서는 몸으로 체험하시었다. 그는 22세에 수도 카이펑에서 열린 과거시험에 진사급제하였고, 3년 후에는 다시 시험을 봐 장원급제를 하여 관직에 올랐다. 그러니까 소동파는 시인이 아니고 직업이 관료였다. 그는 지방에서 첫 관직을 마치고 수도로 올라와 궁정의 일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 왕안석의 신법파와 대립관계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수난의 시작이었다.

 

 소동파 “고기없인 살아도 대나무 없이는…”

 

 소동파는 구법파였기에 지방관으로 전출(1071)되어 항저우(抗州)로 좌천된다. 한직을 맡았지만, 이것이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일깨우는 좋은 기회였음은 물론이다. 항저우는 아름다운 곳이었고, 그가 시를 지을 시간은 많았다. 1074년에는 밀주(密州)로, 1077년에는 서주(徐州) 태수 등 지방 관직으로 사실상 좌천 인사를 당하였으나, 백성의 고충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관리로 업적을 남겼다. 1079년에 신법파에 의해 수도로 압송되어 그의 시는 황제에게 불경스럽거나 불법적 요소가 많다는 이유로 사상검증을 당하게 된다. 목숨은 건졌으나 황주(黃州)로 유배되는 신세가 된다. 그의 최고의 시 ‘적벽부’는 이 시기에 쓰여졌다. 그는 이후에도 사면과 유배, 또 사면을 반복하였고, 사면을 받아 상경하던 중 이질로 사망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소동파는 대나무를 좋아했다. 그의 직업은 관료였지만, 송나라 최고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그는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한다(成竹於胸中)”는 창작 이론을 제안하여, 중국 문인화론의 대표적 창작이론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세상의 평지풍파를 겪고 난 후의 소동파에게 대나무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으리라. 당시의 시각미술이란 것은 수묵과 도자기, 공예 뿐이었으니 그중 관료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붓과 먹이었고, 문인화는 거기에서 유래가 된 것이었다.

 오늘날에 태어났으면 재미있는 문화인으로 살았을 소동파는 대나무를 끔찍이 아껴 대나무에 관한 시도 지었다.

 

 <식탁에 고기는 없을 수도 있겠으나 /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아니 될 일 /

 고기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 /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속되기 마련 /

 사람이 야위면 살찌면 그만이지만 /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가 없다네 /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으며 / 고상한 듯 하지만 역시 어리석다 말하네 /

 만약 이 사람을 마주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 세상에서 어찌 양주학을 부러워할 일이 있겠는가>

 

 소동파는 주신(主神)으로 불리우고 동파육의 창시자로 알려졌을 만큼 술과 고기도 좋아했고, 대나무로 상징되는 선비의 이상과 품격도 좋아했다. 그러기에 나온 시가 아닐까?

 대나무의 절개는 겨울에 드러난다. 이제 겨울의 문턱에서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대나무에 관한 기획전을 열고 있다. ‘풍죽(風竹): 대숲에 부는 바람’전이다. 몇 년 전 봄의 ‘탐매’전에 이은 대규모 기획전시이다. 평소 보기드문 고서화, 도자기부터 현대그림까지 많은 보물급 작품들로 전시장이 풍성하다. 그대로 루브르같은 외국 대형 박물관에 순회전을 가도 좋을 수준으로 생각한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대나무 투영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 전시에 출품된 현대의 그림 중 대나무가 지니는 속성과 시대적 분위기, 작가 개인의 개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서미라 작가의 ‘잔설’이다. 서 작가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서정성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서사의 힘을 구현할 줄 아는 작가이다. 그는 산이나 강, 그리고 하늘, 땅 등의 구조를 바탕으로 유유히 흐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역사는 작가가 구사하는 색채와 매화나 대나무 같은 소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심상화된다. 이 그림에서는 슬픔과도 같은 짙은 푸른색이 깊어져 검게 보이는 강과 강 주위에 안개와 어우러진 프러시안 블루의 빛깔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잔설을 댓잎에 얹은 채 휘어져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대나무를 작가 자신에게 투영하고 있다.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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