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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향연]<48>프란츠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
김경례
기사 게재일 : 2013-12-23 06:00:00
▲ 프란츠 파농 저, 남경태 역, 그린비(그린비라이프).
 프란츠 파농은 앤틸리스 제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나고 자랐다. 프랑스의 피식민지인으로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의사였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혁명가이기도 했다. 그의 유작이었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1961)’은 파농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작품으로 알제리 독립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상황을 통해 독립 이후의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혁명에 대한 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중심 가치관 끊임없이 비판해야

 

 파농은 서구인들이 자신들을 비서구인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유럽중심주의가 어떻게 비서구에 대한 서구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적 담론을 작동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유럽중심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관점으로, 스스로에게 보편적, 역사적 우월성과 권위를 부여하면서 정치경제적 지배만이 아니라 문화 및 인식론적 지배까지 감행하는 것이다. 서구의 경제적 부는 비서구의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 위에서 축적된 것임에도, 바로 그 경제적 우월성을 문명과 진보라는 의미로 구성하면서 식민지배와 인종주의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위장되며 식민지인들뿐만 아니라 피식민지인들에게도 각인된다.

 유럽중심주의는 서구/비서구, 자아/타자, 중심/주변, 문명/미개, 우월/열등의 이분법적 사고를 고착화시키는 정신의 식민화이자 주체의 식민화인 것이다. 그래서 파농은 서구가 비서구를 타자화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비서구가 스스로를 서구에 눈에 비친 타자로 내면화하면서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을 탐색하고 그러한 `존재의 식민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천명한다. 파농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열등 컴플렉스(inferiority complex)라는 개념을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식민지체제에서 흑인들이 흑인성을 유럽적 재현을 통해 인식하고 열등한 존재로 자기 내면화하는 과정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비판한 `검은피부, 하얀가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일제시기에 이루어진 경제발전을 찬미하거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의 경제체제나 제도, 문화를 한국사회에 그대로 도입하려는 것은 주체의 식민화와 함께 하버마스가 이야기하였듯이 생활세계 전반의 식민화를 성장과 진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화하는 것이다. 백인과 영어, 미국문화에 대한 우리의 선망과 열등감을 생각해 보라!

 주체의 탈식민화를 위해서는 유럽중심적 가치와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야 하며 그것을 자연화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파농의 생각이다. 유럽의 성과, 기술, 양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인간(주체)을 창조’해 내는 것. 인류의 새로운 역사는 인간이 인간에 의해 억압받고 착취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즉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적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민주의 잔재가 민중 억압

 

 파농은 탈식민화 과정에서 주체의 문제를 항상 사회경제적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한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인종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근대의 식민지배는 자본의 세계화 과정이었다. 서구의 자본축적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비서구를 절대적 타자로, 미개의 표상으로 희생시키는 과정이었다. 자본의 세계화와 식민지의 인종주의는 프롤레타리아와 흑인(피식민지인)의 비인간화를 수반한다. 인간들 간의 본질적 평등을 선언한 서구의 인간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 타자에게 가하는 억압을 은폐하려는 정치적 술수라는 것이다. 그는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선언된 인간주의가 아니라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존재의 탈식민화 과정이 새로운 인간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치적 탈식민화는 주체의 탈식민화, 의식의 탈식민화와 연동되었을 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농은 정치적으로 독립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식민주의의 잔재가 식민지 지식인과 부르주아지에 의해 내부의 민중을 지배, 억압하는 방식으로 재전유 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필요성을 재기한다. 해방 이후 민족주의를 이용한 일부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식민지 체제에서부터 누렸던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자국의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을 또다시 타자화 하고 혐오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독립은 달성하였으나 여전히 과거의 식민지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로 인해 민중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교묘하게 피폐해져 간다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친일세력들이 여전히 득세하면서 민족부흥을 외치며 산업역군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착취를 정당화했던 한국 현대사의 일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지식인이 왜곡하는 민족주의

 

 파농은 식민지 민족 부르주아지가 탈식민화 이후 민중의 이익을 배제한 채 표명하는 민족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쇼비니즘, 인종주의로 옮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중에게 민족주의는 독립투쟁을 위한 정치적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는 양날의 칼임을 지적한다. 그래서 민족주의가 일부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자국민을 억압하는 식민주의의 대행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인 민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정부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그리고 권리를 빼앗긴 자에 의해, 권리를 빼앗긴 자를 위해” 존재하고 통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민족주의 담론이 생산되고 유포되는 방식이 민중과 권리를 빼앗긴 자들을 위한 것인지, 그들을 통제하고 나와 너를 구별 짓기 위한 것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복지관련 공약들이 하나둘씩 폐기되고 공공영역의 민영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친일인사들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민중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축소시키는 역사교과서의 수정과 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현 정부의 통치방식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물어보아야 할 일이다.

 유럽중심주의, 인간주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파농이 제시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필요성과 존재의 탈식민화를 통한 새로운 주체의 창조라는 발상은 자본의 세계화와 함께 더욱 교묘해지고 있는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김경례<`무등지성’ 운영위원, 전남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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