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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향연]<50>잘 살기 위한 조건들 
지금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
그리해야 잘 살고 있음이다!
박해용
기사 게재일 : 2014-01-06 06:00:00
 해가 바뀌는 시간에 맞춰서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누구는 해가 지는 곳을 향하여 길을 재촉했고, 다른 누구는 해가 뜨는 멋진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고 애를 태우며 피사체에로 몸을 던졌다. 해가 뜨는 장면을 잘 볼 수 있는 좋은 곳을 골라 차지하고서 추운 다리 바닥에 담요를 깔고 해가 뜨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더 잘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잘 사는 것을 선호하며 나름대로 잘 살려고 노력한다. 잘 살려고 하는 노력은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더 잘 살아가려는 노력과 결부돼 있는 것이다. 살아있음은 곧 보다 더 잘 살려는 의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말하고 그 의지를 행위로 옮기려는 실천을 포함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잘 사는 것은 편안하거나 행복하게 사는 것과 다른 것 같다. 그래서 201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잘 사는 것을 위한 조건들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잘 사는 일은 행복과 다르다

 어느 해 여름 진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시골 길을 걷다가 논에서 일을 하고 있던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 몇 마디 말을 섞자말자 할머니는 “나는 여기서 맹글어져서 이렇게 살아부렀어. 나는 한 번도 여기를 떠난 적 없어! 그러나 먹을 것 먹으면서 편안하게 살았어. 행복하게 산거지.” 라고 했다. 진도 할머니는 진도에서 태어나 진도에서만 살았다는 것이다. 80년 이상을 살면서 결코 진도를 떠난 적이 없지만, 그러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 방송에서 들은 적 있다. 어떤 총리 부인과의 인터뷰 내용이었는데, 기억나는 대로 요약한다. `난 남편의 일을 내조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 후 모든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내조했다. 평생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내 일생을 돌아보면 난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진도 할머니가 어떤 사정으로 일생을 한 지역에서만 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잘 살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허나 다른 세상을 한 번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사리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가 잘 살았으리라는 것을 의문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논의를 위하여 형식화해서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태어난 그 지역에서만 평생을 산 경우나 총리 부인의 남편만을 위한 내조의 삶이 서로 공통점을 갖는 것 같다.

 두 경우 각자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이 갖는 어떤 삶의 의미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어나 산다는 것은 생명을 갖는 것이고, 그 생명은 자신에 적합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일을 갖는다. 잘 산다는 것은 존재하는 생명체가 자신에 적합한 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경제적인 부유함은 뭔 상관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사는 것을 경제적인 부유함과 몸의 편안함 혹은 여유있는 생활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행위에서 찾는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라는 구호나 더 넓은 평수를 위한 절약과 저축 그리고 더 나은 생활조건을 위한 맹목적 질주가 이러한 현상을 잘 말해준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물질적 축적에 모든 관심을 돌리고, 일신의 편안함을 찾기 위해서 어려운 일에 대한 도전을 피하고 일상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여유있는 생활을 위해서 더 나은 생활수단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능력을 투여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유함은 잘 사는 것과 하등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생활이 부유하더라도 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생활이 부유하지 않더라도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옳고 그름을 잘 구별하는 판단력을 갖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우리의 삶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의미를 갖는다면, 그는 잘 살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편안한 삶도 마찬가지다. 그 삶이 잘 사는 삶이 되려면 편안하되 오욕의 길을 걸으면 안 된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을 통해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편안함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한다. 잘 사는 삶은 단순히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이 사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은 사회적 연결고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이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가? 다시 말하면 이 일이 세계 속의 내 존재에 적합한 일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이 내 존재에 마땅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타인에 의해서 내게 주어진 것이 나에 의해서 생각되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은 전체적인 것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잘 살기 위한 조건들에는 판단력, 열정 그리고 의미의 지평이 필요하다. 아는 일에 관해서 어떤 일이 참이고 거짓인가를 구별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고 나가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판단능력은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 갖춰야 할 첫째 조건이다.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면 그는 지식의 어둠에 갇힐 것이며, 옳고 바른 행위를 선택할 수 없다면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최상의 판단능력이 될 것이다.

 또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그 조건으로서 열정이 필요하다. 열정은 삶에 대한 애정을 갖고 삶에 열중하는 것을 뜻한다. 열정은 삶은 유한하고 유일하며 오직 생생한 것으로, 자신의 삶은 자신이 자각할 때만 그 생생함을 갖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식하고 삶을 투철하게 들여다보면서 그 흐름과 변화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을 내가 다루는 것이며, 내가 내 삶의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잘 사는 것은 전체가 잘 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내가 잘 사는 것은 세계 속에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 살기 위한 조건으로 의미의 지평이 필요하다. 내 삶이 의미를 가져야 한다. 내 삶이 뜻이 있어야 한다. 뜻은 사람의 삶과 문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의미의 지평 위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박해용<전남대 강의교수, 무등지성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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