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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속세상]운림산방 5대손 허진의 ‘청마’
야성과 영혼 회복을 염원하는 푸른 기상
변길현
기사 게재일 : 2014-01-06 06:00:00
▲ 허진, `유목동물+인간 2009-13’, 한지에 수묵 채색, 122×162㎝, 2009.

 2014년 올해는 갑오년((甲午年)으로 말의 해이다. 특히 올해는 청마의 해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백말띠는 들어봤어도 청말띠는 처음 들었다. 하지만 흑과 백의 대립적이면서 이분법적인 색보다는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좋다.

 

 어지러웠던 120년 전 갑오년

 

 역사를 살펴보면 갑오년은 아무래도 어지러운 역사의 모습으로 먼저 읽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4년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이 발발한 해였다. 자주적인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한 조선왕조와 당시의 지배층은 민중들의 개혁 요구를 외세와 결탁해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민중들이야 죽건 말건, 나라를 일본에 내주건 말건 자기들의 지배계급과 기득권 유지가 더 중요했다. 개혁을 요구한 농민들은 반역자로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데쟈뷰처럼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120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동학농민운동의 단초를 제공했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은 전봉준의 부친을 곤장형으로 때려죽이는 등 악행을 일삼다가 귀양가지만 1년 만에 복권돼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법무민사국장으로 임명돼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지냈다. 조선의 왕 고종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조선은 이런 자들을 왕으로, 또 고위 관료로 두고 있었다. 이런 일들을 거치고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갑오경장이 실시된다. 갑오경장을 평가하는 의견 중에 ‘조선의 자발적 개혁’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그것은 100%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자발적이라면 동학농민운동의 전봉준과 최시형은 사형시킬 수 없다. 조선의 무능력과 부패를 상징하는 고부군수 조병갑이 거꾸로 그들에게 사형을 내리는 법무민사국장이 될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이 조선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영혼이 없는 그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에 빌붙었고, 국권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으리라.

 

 일본 침략·독재 옹호하는 교과서

 

 오늘이라고 그때와 다르겠는가.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가 않다. 일본의 침략과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교과서가 정부에 의해 인정받는 세상이다. 기본적인 오류는 물론이고 일본 국사책인지 한국 국사책인지 헷갈리기만 하는 교과서다. 저질 교과서 채택에 반발하여 고등학생이 대자보를 붙이고, 교장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떼어 내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침략과 독재의 옹호는 물론이거니와, 사실관계도 틀리는 등 교과서의 기본도 안갖췄다고 한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 그런 교과서를 채택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자기 학교의 엉터리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여 소신있는 대자보를 붙인 수원의 동우여고, 동원고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누구나 자기 학교를 사랑하지만, 이런 용기가 그대들의 학교를 명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명문학교란 언론이 보도하듯 서울대 합격자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광주학생운동, 4·19학생운동의 예에서 보듯 사회의 불의에 항거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자기희생의 전통에서 명문이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전주의 상산고는 안타깝게도 이사장과 교장, 교감의 독재와 전횡이 고부군수 조병갑에 못지않은 모양이다.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간다는 자칭 명문고인데, 아무도 수원의 동우여고·동원고 학생들처럼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교감의 서슬퍼런 호통만 전해진다. 이런 자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성적만 올리기 위해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성적기계학생들의 미래가 보인다. 전주 상산고는 이제 명문의 허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엉터리 교과서로 명문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자식을 그런 학교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영혼을 추구하는 허진의 그림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미술과 문학은 암울한 현실에 위로를 준다. 새해 청마의 기상을 받아 힘차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 위안에 그칠지라도 말이다. 문학은 글로, 미술은 시각이미지로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운다. 마침 청마(靑馬)라는 호를 가진 통영 출신 유치환 시인의 시를 읽어보아도 좋겠다. 그 호처럼 아름답고 멋있는 시들이 이 세상을 빛나게 해준다. 오늘 소개할 그림은 허진 작가의 청마 그림이다.

 허진은 호남 남종화의 뿌리인 운림산방의 5대손이다. 소치 허련부터 남농 허건까지 그의 할아버지들은 전통 남종화를 그렸다. 이제 21세기 속의 허진의 그림에는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와유(臥遊)의 이미지는 없다. 현대사회를 사는 그의 관심사는 사회와 문명과 인간과 환경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의 세계를 이룬다. 그가 그의 그림에 담는 이미지는 인간, 동물, 현대문명의 도구들이다. 화면 속에 둥둥 떠다니는 익명의 인간들은 침묵으로 그 정체성을 잃었고, 화면 중심에 자리 잡은 유목동물은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슬픔을 담고 있다. 생명과 영혼의 추구가 그의 그림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허진 그림의 주인공은 청마(靑馬). 영혼없는 인간들 사이에서 푸른 기상을 내뿜고 있는 수작이다. 이 청마와 같은 기상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진 야성(野性)과 영혼을 회복하는 2014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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