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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향연]<51>괴테의‘파우스트’<1>
사랑의 두 얼굴; 욕망과 그 구원의 힘
심옥숙
기사 게재일 : 2014-01-13 06:00:00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전)작가) 저, 이인웅 역, 문학동네.

 괴테가 쓴 세계적인 문학작품 `파우스트’는 주인공인 파우스트 박사가 맺는 악마와의 계약 못지않게 그레첸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유명하다.

 파우스트 박사는 삶에 대한 절망과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에 대한 회의로 괴로워하다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 젊음을 되찾아서 세상의 거리로 나간다. 어두운 연구실을 벗어나서 단 한 번만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젊은 남자로 변신한 파우스트가 처음 만난 처녀가 그레첸이다.

 

 너로 인해 오두막도 천국이 되는구나. (파우스트, 2708행)

 

 그레첸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집안의 딸이지만,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주어진 삶에 자족할 줄 아는 소박하고 얌전한 처녀다.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집안일에 충실하며, 많은 동생들을 엄마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돌보면서 이웃과도 다정하게 지내는 흠 잡을 데 없는 성품이다.

 그러나 그레첸이 파우스트를 만나고 사랑을 알게 되면서 그레첸의 삶은 한 순간에 돌변한다. 악마의 도움으로 멋진 청년이 된 파우스트는 누구보다도 품위 있고 정중한 태도로 거리에서 마주친 그레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그러한 감정을 그레첸은 이렇게 표현한다.

 “정말로 늠름해 보이는 게 고귀한 가문의 출신 같았어. 그런 거야 이마만 봐도 알 수 있거든.”

 이에 앞서 그레첸은 접근해오는 파우스트에게 “저는 아가씨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아요”라는 말을 통해서 자신이 파우스트와는 전혀 다른 신분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밝힌다. 그레첸이 속한 세계는 파우스트가 살아온 세계와는 전혀 달리 소시민적이고 목가적이다. 지금까지 그레첸은 소시민적 규범과 도덕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아의식보다는 공동체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아무 불평 없이 살아왔다. 지식은 물론 세상에 대한 큰 호기심도 관심도 없이 집안일과 신앙생활에 충실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 갈등도 고민도 없이 순수하고 천진한 그레첸을 파우스트는 `아이’라고 부른다. 그레첸은 파우스트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맹목적인 순종과 의존으로 나타난다.

 “오, 고맙기도 해라! 저분은 정말 생각도 깊고, 모르는 게 없으시구나! 그이 앞에 서면 그냥 부끄럽기만 하고, 무슨 일에 난 네네 하고 대답할 뿐이야. 나야 아무 것도 모르는 불쌍한 아인데, 왜 나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

 

 진정한 사랑을 맹세하지 않겠어요? (파우스트, 3054행)

 

 파우스트를 사랑하면서부터 그레첸은 더 이상 순진하고 얌전한 시골 처녀로 머물지 않는다. 그레첸에게 생전 안 하던 고민과 괴로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레첸은 자신의 가난과 보잘 것 없는 신분을 의식하게 되면서 갈등에 빠진다. 파우스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커지는 만큼 자신의 처지를 더 부끄럽고 불행하게 여긴다.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그레첸도 상대방의 외모와 신분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일까? 생각해보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외모가 `스펙’이 된 것이 사실 요즘 세상의 일만은 아니다. 외모는 사실 역사에서 늘 `스펙’이었고, `자본’이었으며, 특히 여자에게는 신분상승을 위한 거의 유일한 `도구’였다. 예나 지금이나 하긴 아름답고 잘 생겨서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레첸이 조건을 보고 파우스트를 사랑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그레첸의 사랑에서 그렇게 큰 의미를 찾는가?

 사랑에 빠진 그레첸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신앙에 대해서도 흔들린다. 그레첸은 “신을 믿으시나요?”라는 유명한 `그레첸의 질문’을 하긴 하지만, 파우스트의 말을 듣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한다.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소? 누가 고백할 수 있겠소, 나는 신을 믿는다고? (…) 그는 당신을, 나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괄하고 보존하고 있지 않소? (…) 나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소!”

 

 누가 내 사랑을 뺏어갔나요? (파우스트, 4497행)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단순하고 무비판적인 신앙을 사실 돌려서 나무라지만, 그레첸은 파우스트를 더욱 더 경탄한다. 그리고 그레첸은 이제 파우스트를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놀랄 만큼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파우스트와의 사랑을 대담하게 육체적 욕망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아, 제가 혼자 잘 수만 있다면요! 오늘 밤 당신을 위해 빗장을 열어놓겠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잠귀가 얼마나 밝은지 몰라요. 만약 우리가 어머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전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지요! (…)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요?”

 그날 밤,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건네주는 독약을 어머니의 음료수에 타고, 그녀의 어머니는 죽는다. 그레첸은 늘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에게 그런 것처럼 파우스트에게 당연하게 순종하였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그레첸은 파우스트와의 사이에서 불행하게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죄책감 때문에 미쳐간다.

 하지만 그레첸은 바로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힘을 갖게 된다. 그레첸은 사랑이 가진 또 다른 얼굴, 사랑 뒤에 숨은 욕망과 본능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욕망 앞에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레첸은 자신이 욕망의 늪에 빠진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인식에 도달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왔을 때, 감옥을 탈출하는 대신 처형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그레첸은 `아이’에서 한 인간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변화한다.

 “전 어머니를 죽였고, 우리 아기를 물속에 빠뜨렸어요.(…) 전 가서는 안돼요. (…) 구걸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에요. 게다가 양심의 가책은 어떡하고요!”

 그레첸은 처형을 선택하지만 그럼에도 파우스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용서한다. 그레첸은 비록 사랑을 어린 아이처럼 미숙하게 시작해서 깊은 혼란과 방황을 겪고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그러나 사랑을 지켰고 그 사랑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사랑을 통해서 인간다움과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마침내 스스로 성장한다.

 그레첸에게 사랑은 욕망의 충족이나 쾌락이 아니고, 자아인식과 성숙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레첸의 사랑을 순결하고 숭고한 사랑이라고 말하며, 그레첸은 괴테가 말하는 저 유명한 `우리를 끌어올리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모습을 보여준다.

심옥숙<무등지성 대표/전남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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