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나오는 울림의 빛

▲ 손상기 작 양지, 130×162cm, 캔버스에 유채, 1973.
 서울 인사동에는 ‘여자만’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처음에는 인사동 모퉁이의 지하 식당이었다. 지하에 있었기에 ‘여자만’이라는 하얀색 한글 간판만 보였다. 그래서 고흥이나 여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자만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인 줄 알고 일종의 호객용 간판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여자만(汝自灣)’은 영화감독인 이미례 씨가 만든 남도음식점이다.

 

 아름다운 ‘여자만’의 자연

 

 벌교 꼬막, 홍어삼합, 서대, 매생이, 하모 등 남도에서 나는 재료와 정성을 가지고 음식을 한다. 서울 인사동 근처에서 술 한 잔 곁들여 식사를 하고 싶을 때 이 집을 택하면 실패는 안한다. 주인장인 이미례 씨는 동국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 ‘영심이’(1990)를 찍은 영화감독 출신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80~90년대에 여자로서 영화감독을 한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산악인이자 등산잡지 편집장이었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남편을 둔 덕에 남도음식을 접한 이미례 씨는 생계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집의 매력은 주인장 부부를 닮아 단순한 남도음식과 함께 하는 문화이다. 이 집에서 유명한 시인이나 예술인들이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모 출판사에서 낸 ‘술꾼들이 즐겨 찾는 술집 100곳’에 당당히 25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모 신문사 기자가 낸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라는 책에도 이름을 올린 이곳은 지금은 인사동의 1·2호점 이외에 일산, 분당에까지 분점을 두고 있고, 인사동 1·2호점의 경우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 음식점에 가면 주인장이 남긴 특이한 멘트를 볼 수가 있다. “영화로 쪽박 차고 식당으로 대박난 영화감독 이미례”, 영화감독다운 넓은 시야와 너스레가 인상적인 문구이다.

 경기도 출신인 이미례 씨 덕분에 서울에 알려진 ‘여자만(汝自灣)’은 고흥, 보성, 순천, 여수로 둘러싸인 내해(內海)이다. 왼쪽의 고흥군이나 북쪽 순천만을 둔 순천시로서는 억울할 일이지만, 여자만은 여수시에 치우친 지명이다. 내해 한 가운데에 여자도가 있어 여자만으로 불리는 것이다. 여수시의 홍보자료에 따르면 여자만 해역은 우리나라에서 갯벌의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하며 갯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해양수산부로부터 연안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여자만은 자연경관이 뛰어나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여수엑스포를 통해서 전국에 알려진 여수는 이 곳 여자만 뿐 아니라 아름다운 많은 경관을 가지고 있다. 여수반도는 크게 세 개의 내해를 가지고 있는데 왼쪽부터 여수만, 여수시청 쪽 내해, 여수엑스포 오동도 쪽 내해가 그것이다. 세 곳 다 아름답고 풍요롭다.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이곳이 아닐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동해안이나 부산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갯벌과 많은 섬들, 그리고 잔잔한 푸른 바다를 동시에 가지기는 힘들다. 이태리의 지중해가 부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기업 회장이 이곳에 별장을 짓는다는 소문이 기사로 났다. 그런 것도 기사가 되나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곳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여수의 복합문화공간 예울마루

 

 자연경관과 여수산단으로만 알려져 있던 여수의 문화지형을 바꾼 일이 있었다. 2012년 여수시와 여수산단의 대기업인 GS칼텍스가 함께 세운 여수의 예울마루가 그것이다. 여수시와 GS칼텍스는 1000억 원의 예산으로 예울마루라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냈고 이곳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못지않은 세계적 공연과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12월에 대한민국 메세나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계적 수준의 공연전시와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예울마루는 전남이나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예울마루는 비탈진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계곡 속에 공연전시장을 건축함으로써 한국의 자연스런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는데, 바로 앞의 조그만 아름다운 섬도 매입하여 미술관을 추가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예울마루에서 지금 여수 출신 손상기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손상기는 여수출신의 요절화가이다. 3살 때 앓은 구루병으로 평생 척추장애와 병마를 지니고 살았다. 그를 위안했던 것은 오로지 그림과 사랑뿐이었다. 어느 날 운명처럼 꽃다운 사랑을 만났으나 편견과 장애, 현실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성벽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랑의 도피를 위해 선택한 서울은 그에게는 너무나 춥고 불편한 곳이었다. 그는 그 암울한 심정과 시대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그림은 우울한 회백색과 암갈색이 주조를 이루고 거친 스크래치로 이루어져 어두움이 큰 특색이나 특이하게 어둠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그림은 1980년대 초반 서울의 모순과 삭막함을 담은 ‘공작도시’ 시리즈와, 그의 내면의 모습을 담은 ‘시들지 않는 꽃’, ‘자라지 않는 나무’ 시리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편함으로의 초대이다.

 

 여수의 요절작가 손상기

 

 오늘 소개할 그림은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의지했던 그의 부모님과 그의 고향 여수의 따뜻함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그가 1973년 고향을 떠나 원광대에 입학했을 때 그렸던 ‘양지’는 그의 고향과 부모님을 그린 것이다. 그가 1980년대 서울에서 그렸던 극도의 절망적이고 어두운 작품들과 명징하게 대비된다.

 ‘양지’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인물의 뒤로는 소가 편하게 쉬고 있고, 어린 손상기도 어머님의 품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 그에게 있어 그를 따뜻하게 품어준 사람은 그의 부모님뿐이었으리라. 그의 고향 여수도 그에게는 영원한 안식처였다. 평생 장애와 소외에 시달렸을 손상기의 내면이 짐작이 가는 그림이다. 이처럼 서울에 가기 전 그의 그림은 ‘향토적 서정’이 가득한 그림이었다.

 공사판, 산동네, 가난, 무관심, 추위로 가득한 서울은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그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는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신과 흔적을 반영하였고, 무엇보다 그의 영혼을 그림에 담았다. 손상기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빛을 발한다. 어둠에서 나오는 울림의 빛이었다.

 그는 서울 생활 10년째인 1988년 지병으로 요절하였다. 불과 39세였다. 그의 고향 여수에서는 손상기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여수시, 샘터화랑 등과 함께 손상기기념미술관을 건립한다고 한다. 낯선 서울에서 외롭고 추웠을 손상기의 작품이 아름다운 여수에서 어두운 빛이 아니라 따뜻한 빛을 발할 것이다.

 여수 예울마루가 주최한 ‘손상기 25주년’전은 이번 주 26일까지이다. 25일에는 예울마루에서 빈소년합창단의 내한공연도 있으니 함께 보아도 좋겠다. 여수의 풍광은 겨울에도 아름답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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