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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속세상]프란시스 베이컨의 페인팅
그에게 괴물은 무엇이었을까?
변길현
기사 게재일 : 2014-02-03 06:00:00
▲ 프란시스 베이컨의 페인팅(Painting) 198×132cm, oil and pastel on linen, 1946

 전두환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가 진행돼 화제다. 검찰이 압수한 전두환 일가 미술품을 경매회사에 위탁해 판매하는 특별경매이다. 작년 12월에 1차 경매가 있었고, 1월에 2차 경매가 있었다. 1차 경매에서는 100% 낙찰률로 이슈를 만들더니, 2차 경매에서는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 씨의 아마추어 작품 20점이 완판돼 또 이슈가 되었다.

 이번 경매를 지켜보면서 몇 가지 놀란 점이 있다. 첫째는 시공사를 만든 장남 전재국 씨의 전재국 컬렉션, 둘째는 1989년부터 그림을 그린 차남 전재용 씨의 그림 취미이다. 셋째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추징금을 왜 완납 못 받을까 하는 의구심인데, 여기서는 그림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

 

전재국 컬렉션 25억 원 낙찰

 

 시공사는 1990년에 전재국 씨가 세운 종합출판사이다. 물론 부친의 돈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재국 씨가 소유했던 미술품들도 그 돈의 출처가 전두환으로부터 나왔기에 압수된 것이다. 12월에 있었던 1차 경매에서 80점을 내놓아 총 낙찰가 25억7000만 원, 100%의 낙찰률을 기록한 것은 전재국 컬렉션이 나름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아버지는 희대의 독재자였지만 아들은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전 씨의 출판사는 단행본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적이 있었고, 프랑스 출판사의 문화유산 총서인 번역판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잡지 같은 정기간행물을 내거나, ‘리브로’ ‘을지서적’ 같은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사업수완도 나름 괜찮았던 모양이다. 물론 설립이나 운영자금이 깨끗하다는 전제에서다.

 형이 예술을 사업에 이용했다면, 동생은 직접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뉴스를 통해 듣기에는 동생 전재용 씨는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도 된 적도 있어 삶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평범한 삶이 제일 부러운 삶일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마음이 편했을까?

 

전재용의 모작 220만 원 낙찰

 

 2차 경매에는 전재용 씨의 그림 20점이 나왔는데, 경매 도록의 앞 페이지에 나온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모작한 그의 그림이 220만 원에 팔렸다고 한다.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도 팔 수 있는가? 당연히 팔 수 있다. 죽는 데 선후배 없듯이 파는 데 프로와 아마추어 없다. 가죽만 없는 선홍빛 근육질의 남자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육체미를 뽐내는 모습이다. 경매도록의 첫 페이지에 나왔던 전재용 씨의 그림은 1989년 작이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미국 유학중이었고, 그의 부모는 백담사에 은거하고 있었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여겼던 독재자의 아들. 그에게 괴물은 누구였을까?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의 모작의 대상인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은 ‘베이컨-회화의 괴물’이라고 하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반적인 회화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기괴한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909년 퇴역군인이자 기마 조련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건강상 정규학교는 못 다녔다. 16세 때 그는 어머니의 속옷을 입어보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집에서 쫓겨나 런던, 베를린, 파리 등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집을 떠나 유럽의 문화를 경험한 것이 그의 회화적 재능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20살 무렵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림도 그렸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내장식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렸지만 화단의 인정은 못 받았다. 1941년 런던을 떠나 시골생활을 하였고, 1944년에는 런던으로 돌아와 이전에 그린 모든 그림을 파괴했다. 1944년 다시 그림을 시작하면서 런던의 하노버 갤러리에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의 화가로서의 일생이 시작된다. 1946년 세계적인 미술관인 뉴욕 모마의 컬렉터가 그의 작품 ‘페인팅’을 구입한다. ‘페인팅’(1946)은 무명의 화가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었다. 뉴욕 모마의 컬렉터는 이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이라고 알아보았고 2년 후 이 작품은 뉴욕 모마에 소장된다. 이것이 그의 예술인생의 시작이었고 그는 작고할 때인 1992년까지 20세기 최고의 영국화가로서 명성을 유지한다.

 

 베이컨 입체적 회화는 ‘경악’

 

 피카소의 입체적 회화가 유희에 가깝다면 베이컨의 입체적 회화는 경악에 가깝다. 육체와 영혼. 베이컨은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꺼이 그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와 같다. 다만 그가 실제 살인마와 다른 것은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깃덩어리는 그의 예술적 질료였다.

 고깃덩어리로 가득 찬 공간에 대상을 가두는 원통형 구조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성직자의 옷을 입은 독재자가 잘려진 머리를 한 채 울부짖고 있다. 독재자 무솔리니의 사진이 이 그림의 출발점이라고 하는데,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개인적 배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고깃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세계대전, 나치와 무솔리니 등 전쟁광이 파괴한 세계, 동성애자였던 그의 불우한 청년기 등의 배경이 유럽의 문화적 배경과 어우러져 이러한 작품을 낳은 것이다. 그의 작품은 1990년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통해서도 한국에 널리 알려졌는데, 인간의 가죽(권위, 표상)을 벗겨버리고 머리(진실이라고 믿는 것)를 왜곡시켜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회화방식은 베이컨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전재용 씨가 이런 베이컨의 그림을 모작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하다.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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