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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향연]<56> 오디세우스의 욕망의 패러독스
오디세우스는 묶여 있고 노젓는 부하들은 듣질못했네
박해용
기사 게재일 : 2014-03-03 06:00:00
▲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이름이고, 패러독스는 역설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역설이 뜻하는 말은 옳은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경우를 일컫는다. 패러독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para’와 `doxa’이다. `para’는 무엇을 넘어선다는 뜻이고, `doxa’는 일반적 의견을 말한다. 이들을 종합해 보면, 패러독스란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선 좀 괴이한 것이다. 이 괴이한 의미에서 역설은 매우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된다. 또 어떤 주장이 역설이 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역설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오디세우스가 가진 욕망의 실현과 이를 통해서 수반되는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인문학

 

 명성이 자자하던 오디세우스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패러독스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시작하자. 일단 패러독스의 예로써 괴이한 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요즘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한다.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열심히 배워야 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문학의 귀중한 내용을 미리 배운 학자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아직도 모르느냐고 꾸짖으면서 TV나 대단위 강연을 통해서 대중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안달이다.

 심지어 자본주의적으로 잘 훈련된 인문학자들은 잘 준비된 인문학의 내용들을 재미있는 그림이나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무언가 남은 것 같기도 한 강연들을 한다. 이 강연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히 인문학 붐이요, 전성시대이다.

 특히, 광주의 경우는 더 심하다. 서울의 유명 인문학 강사가 왔다하면 대중 스타에 열광하듯이 사람들이 모인다. 유명한 인문학 강연회를 열심히 쫓아 다니는 이들은 황금알 같은 생각들을 주워 담다 못해 깨알같이 적어온다. 그리고 잠시나마 삶의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막상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사람답게 사는 삶의 방향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느냐고 물어보면 언뜻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웠던 인문학이 사람답게 사는데 공헌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괴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패러독스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막상 인문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사람답게 살게 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문학은 불임(不姙)의 인문학이다.

 인문학에 관한 공부가 불임이 되지 않고 사람을 변화시키게 하려면 고전과 직접 자기 몸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자신의 눈으로 고전을 읽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느낀 내용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고전을 읽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뭐하느라고 그렇게 시간이 없는겨?) 그리고 고전을 읽을 때 자신의 눈으로 읽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기 위해서 오뒷세이아의 일부를 함께 정리하면서 생각해보자.

 

 욕망을 실현하며 세이렌 섬 통과

 

 사자의 용기를 가진 훌륭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바다를 헤맨다. 그렇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빨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아다닌다. 그는 위험한 바다와 대결하고 무서운 괴물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계속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이와 같이 지략이 많은 오디세우스는 험난한 여정에서 자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짜내고 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자연의 힘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한 인간의 고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갖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무엇인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던 여명의 시대에 인간됨을 드러내려는 처절한 자기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인내심이 많은 오디세우스가 극복해야 할 수많은 난관 중 하나는 세이렌의 섬을 지나는 일이다. 세이렌은 여인의 얼굴을 하고 새의 몸을 가진 바다의 요정이다. 서로 자매인 이 요정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이들이 유혹하는 노래를 들은 선원들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 세이렌을 향해 노를 저어가게 되고 결국은 그들의 바다 제물이 되고 만다. 인간이라면 아름다운 노래 소리의 유혹에 자연스럽게 빠져 들 것이다.

 그런데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에 당면하여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으려는 욕망과 자신을 보존하려는 욕망이라는 두 가지 욕망 앞에 선 것이다. 세이렌의 섬을 통과해야 하는 불운한 오디세우스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꾀를 냈다. 먼저 부하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밀랍으로 귀를 막게 하고 오직 노만을 젓게 했다. 부하들에게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못하고 하게 오직 노동만을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 꼼짝을 못하게 함과 동시에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의 자유를 얻었다. 그는 몸이 부자유한 상태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은 강력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에게 더 가까이 노를 저으라고 명령하지만 그의 고함소리는 파도에 묻히고 부하들은 노를 저어서 그 위험한 섬을 빠져 나온다.

 

 아름다웠으나 반응 못한 패러독스

 

 이렇게 하여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는 원하는 욕망을 둘 다 실현했다. 죽음을 대가로 해야만 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몸으로 실현했고, 기본적 욕망인 목숨도 유지했다. 한편으로 보면 그는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은 승리자요, 아름다움을 원하는 대로 만끽한 위대한 정복자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그는 부하다운 부하를 잃었고, 그는 또한 자신의 행동의 본질을 잃었다.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노만을 젓게 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한 야만적인 부하로 남게 하였다. 그는 사람이 감성을 깨울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의 부하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부하들에게서 사람다운 정서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였다. 결국 그는 좋은 부하를 잃은 것이다.

 임기웅변에 능한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듣는 욕망을 실현했지만 또한 자신의 부자유함을 담보로 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이 자유 상실은 그에게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자유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느낌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느꼈지만 그 순간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잃어버렸고 결정할 권한을 빼앗겼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파괴된 순간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느꼈지만 그가 느낀 아름다움은 불임일 뿐이다.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했다. 그의 귀가 놀라운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을 하지 못한 식물인간이었던 셈이다. 아름다움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의 몸에 남아있지 못하다. 이것이 신과 같은 오디세우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욕망의 괴이한 패러독스이다.

 현대인은 스스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을 읽으면 그 안에는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여 변화시키는 옛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들어 있다. 나무랄데 없는 오디세우스의 욕망의 변증법 혹은 패러독스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욕망의 빛과 그늘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내 욕망은 어디를 쫓아가고 있는가? 나의 욕망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욕망의 패러독스를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 한번은 일찍 집에 돌아가서, 작은 방에 들어가 혼자 생각해 보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이야기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박해용<전남대 철학과 강의교수, 무등지성 강사>



필자 박해용은 현재 무등지성에서 `오뒷세이아2’를 강의하고 있다. 다음 강의로는 새롭게 진행할 `문화예술 대화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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