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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의 ‘명발당’에서]비엔날레는 광주에 기여했나?
윤정현
기사 게재일 : 2014-03-03 06:00:00
▲ 97광주비엔날레(주제-지구의 여백) 커미셔너였던 하랄트 제만이 큐레이팅 한 `속도’전에 출품되었던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의 작품 민들레 꽃가루.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이 말은 전시기획자 하랄트 제만이 프랑스 68혁명을 주제로 1969년 스위스 베른 쿤스트할레에서 열었던, 20세기 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전시 제목이다. 그는 `97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로도 일한 적이 있다. `시대의 설정자’라고 불릴 정도로 20세기 후반 예술과 지적 활동의 나침반 역할을 했지만, 국내에서는 그저 이름 난 전시기획자 정도로나 여겨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선언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 및 인근지역 문화의 예술적 승화라는 요지의 말이 있다. 해서 매번 비엔날레를 할 때마다 광주는 화두가 되었다. 특히 올해는 5·18이 주제다. 여러 행사가 열릴 것이고, 떠오르는 샛별들이 모인 말들의 성화가 필 것이다.

 하랄트 제만은 늘 빚에 허덕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전시에 비해, 자주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폰서를 구해오거나 심지어 자기 돈을 들여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곤 했다. 광주는 어떨까? 매회 얼추 100억 원 정도의 큰돈을 들여 행사를 하지만 국제미술계에서의 광주의 처지는 OECD에 급히 진입한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지금 한국은 세계 교역순위 11~13위를 오르내리지만, 객관적인 통계상 `삶의 질’은 60위권 이하다.

 

100억 원 썼지만 국제적 평가는 인색

 돈 많은 나라라면 `삶의 질’도 그에 필적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광주 역시 엄청난 공적 비용을 들여 행사를 하니까 그에 맞먹는 예술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광주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세계사의 의미 깊은 곳이 아닌가.

 물론 형식들은 많다. 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 도시 공공 조형물물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형식, 대상, 콘텐츠들은 도서관에 책들이 빽빽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 찾아 쓸 수 있는 책이 없는 것과 같아 보인다. 꼴은 갖추었으되 광주에 사는 내가 `잘 사는 데’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이다.

 예술은 개성과 차이, 특질 같은 덕목과 자율성이 강조되지만 그것이 곡해되어 `전가의 보도’가 돼선 곤란하다. 더구나 다른 데와 달리 비용의 대부분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니까. 비엔날레라는 문화행정 과정에는 반드시 최소한의 절차적 `공공/민주성’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의 도시 광주 5·18을 모토로 한 비엔날레 운영 과정에서 민주는커녕 늘 삼류 정치가 판을 쳤다.

 그 사례들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는 줄곧 광주의 이런 문제를 언급하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광주는 `신정아 사건’이 보여주듯, 늘 정치적 비즈니스에 능숙한 사람들이 등용되곤 했다. 그들에게 문화정치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의 가치를 저버린 아주 오도된 것이었고, 그 폐해는 한번 쏟아지면 주워 담기 어려운 물처럼 치명적이다.

 

시장이 뽑은 디렉터의 `함정’

 비엔날레의 정점은 이사장인데, 지금 시장이 겸직하고 있다. 이사장 일에 소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러다 보니 디렉터 출신의 부이사장(현재는 대표이사)이 그 일의 대부분을 위임받게 되었다. 함정은 여기에 있다. 사람의 관계는 공사 구분이 모호하기 마련인데다, 특히나 문화행정은 제도와 비 제도를 넘나드는 일이어서, 디렉터를 뽑을 때 문제가 생긴다. 공과 사가 마구 뒤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쯤 디렉터는 광주의 이름으로 비행기를 타고 지구촌 곳곳을 누빌 것이다. 그러나 이 발달한 교통 통신의 시대에, `좁쌀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선지자의 말처럼 광주는 좀 달라야 한다. 디렉터는 물론 이사장의 눈도 바깥보다 안에 있어야 한다. 진정 그들의 눈이 가 닿아야 할 곳은 뉴욕과 파리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살아온 광주다. 여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서럽고 시린 가슴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비엔날레가 5대 국제비엔날레라는 것, 국제비엔날레들의 재단을 만들어서 본부를 광주에 두고 있는 것 등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비엔날레는 그런 명명이나 제도와는 정반대다. 자화자찬 홍보가 효험을 본 것이다. 시민들이 순박한지 홍보의 기술이 뛰어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문화행정이 이런 식으로 전문영역으로 치부되고 과잉보호 되고 있다.

 이를 견제해야 할 시의원들에게 비엔날레는 `하수관거사업이나 비엔날레나 그게 그것’이고, 시민활동가들은 전문가들을 너무 경외하는 나머지, 내세우는 명분에 비해 통찰력이 부족하다. 용역 수행에 바쁜 교수들과 지성인들 역시 제 얼굴에 똥 뒤집어쓰기 싫어 입을 닫는다. 이렇게 광주비엔날레는 관행과 무관심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예술은 항상 진보의 편이었다. 5·18 직후 아무도 입을 열어 말을 못할 때, 시인과 화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광주를 광주이게 했다. 생긴 지 20년이 된 비엔날레는 그동안 우리, 나에게 어떤 예술적 성취를 했고, 우리와 내가 사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그 답이 분명하진 않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우리는 시장이 대표이사를 뽑았다는 사실 하나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68혁명이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듯, 광주도 그랬으면 좋겠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윤정현



 윤정현은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3년째 강진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시인이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고, 지금은 `잘 살기’를 꿈꾸는 미학에세이를 쓰며 여러 가지 방식의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명발당’은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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