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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의 ‘명발당’에서]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시시하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며
윤정현
기사 게재일 : 2014-03-31 06:00:00
▲ 명발당의 모습.

 시골에 온 뒤로 신문과 텔레비전을 뚝 끊었다. 광주에서 고향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예 갖고 있던 텔레비전을 후배에게 줘버렸고, 신문은 원래가 그다지 보지 않는 편이었다. 도시와의 왕래도 가급적 삼갔다. 그래도 전화와 인터넷은 쓰고 있는데, 기실 인터넷만 써도 신문과 방송을 원할 때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제목만 보는 편이지만.

 시골에 와서 딱 1년 동안 일 같은 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집 주변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구경이나 해찰을 하며 돌아다녔다. 동네 아짐들이나 시골 친구들과의 막걸리판이 그나마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다 할아버지들 산소에서의 시제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 정도로 반경을 넓히기는 했지만.

 강진 도암 집에서 해남이나 장흥 같은 쉽게 가볼 만한 곳들을 마음대로 쏘다녔다. 해남 고천암 갈대밭, 산이면 황토언덕, 미황사 부도밭, 도솔암, 좌일 전방후원분, 강진만, 백운동별서, 병영 돌담길, 장흥 수문포, 유치, 완도 생일도 같은 곳이 그곳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1년의 기간 동안을 오로지 나를 위해 산, 내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한 배움의 무망함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내가 사는 집에 대해 나는 물론 다산학에 정통한 사람들조차도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내가 사는 집은 다산의 유배생활과 아주 밀접한 곳이지만, 내가 이 집에 와서 산 지 2년 만에 국내 다산 관련 글을 쓴 아주 유명한 분조차 처음 오시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를 가는 길 가에 있었던 다산 선생 따님의 묘도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과 다투기까지 하면서 양난을 승리로 이끌었던 분의 묘가 바로 집 근처에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전혀 그런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문한 때문이지만 나는 대학을 다닐 때 내내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전투를 우금치로 알고 있었는데, 장흥-강진의 석대들에서 그 몇 달 뒤 대전투가 있었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됐다.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먹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책이나 어디서 들어서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망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되도록 머리를 비우고 몸으로 지내자는 편이다. 그리고 너무 주제넘은 말이지만, 나는 이 세계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한다. 그 나조차도 되도록 몸이었으면 하는데, 그것은 내 몸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들도 별무소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어느 집단, 사회를 위한다는 것도 위선적이어 보인다. 심지어 나는 부모가 돌아가셔서 슬퍼할 때에도 그분보다는 내 자신의 설움 때문이었을 거라고 여긴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우리’에 골몰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동안 내 자신이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실 나는 내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처자식이나 부모형제, 일가친척도 마찬가지. 그들은 단지 그들일 뿐. 확고한 개별자들, 개인적 자아가 확립되고,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리고 난 뒤에 서로가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연대가 가능할 거라고 본다.

 

 내가 강해야 권력 눈치 안본다

 

 서구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꽃필 때를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민주주의로 드는데, 나는 어느 책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민중들이 개별적 자아를 확고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제각기 작은 농사를 짓는 자립적 소농들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자립/독립성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이웃이나 사회, 절대권력이나 국가체계 같은 사회 제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우리를 볼 때, 과연 그것은 가당키나 한 일일까?

 우선 생각하는 것부터가 내 자신만의 것이 별로 없다. 나는 지금 책에서 읽은 것들, 교육과 사회화, 정보체계의 그물망에 너무 촘촘하게 갇혀 있다. 오래 전 사람들은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도 훌륭한 인품과 앎이 많은 분들이 있었다. 실제의 농사를 짓는 것은 이를테면 박사학위 같은 지식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이러저러한 지식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지식이나 관념의 체계라는 것은 ‘일반성’에 의존할 뿐 ‘특수성’에 대해서는 별무대책이다.

 나아가 나는 이 세상과 사람살이에 대해 이러저러한 앎의 체계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편협하고 자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너무 실감난다.

윤정현



윤정현은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3년째 강진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시인이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고, 지금은 `잘 살기’를 꿈꾸는 미학에세이를 쓰며 여러 가지 방식의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명발당’은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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