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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의 ‘명발당’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동생 현이에게
윤정현
기사 게재일 : 2014-06-09 06:00:00

 선거 개표결과가 나온 뒤 위로라도 하려고 네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조차 받지 않던 현이야. 통진당의 선거운동에 골몰했던 네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싶다. 내게도 이런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단다. 나는 이런 대의정치와 제도가 신물이 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아득하기만 하다.

 통진당에서 이번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사람들의 수가 광역의원 3명에 기초의원 34명뿐이라지? 민주당은 또 어떻고.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어도 눈 먼 유권자들은 물론 저 철면피 같은 능구렁이들을 보노라면 기가 다 질린다. 당선자 열 명 중 네 명이 전과자라지? 입맛 없어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는지 모르겠구나. 지금의 너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데 나도 일조 한 것 같아서 양심의 가책이 물 밀 듯 밀려 오구나.

 

 진보정당의 참담한 성적표 앞에서

 

 그때를 기억하는지. 1984년 겨울, 네 계림동의 초라한 자취방과 내가 있었던 사회단체에서 만들었던 유인물들…. 쪽방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던 네게 대학생이었던 이 형이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그때 나도 학교에서 제적되어 사회단체의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의 잇단 압수수색 때문에 문건들을 숨길 데가 없었어. 그러다 생각난 곳이 언덕배기 꼭대기의 네 방이어서 거기에 문건들을 숨겨뒀었지. 나는 또 그 무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는 식의 퍽이나 감상적인 시를 긁적이기도 했는데 너는 그것들을 읽어봤는지.

 졸업을 하자마자 등나무 가구를 만드는 가내공장에 취직했다간, 정말 서럽게 대학에 갔던 현이야. 입학해서 문학써클을 하면서 그 무렵 군인들 같은 단체 활동을 했던 현아. 경찰에 쫓기던 선배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대학을 그만두고, 또 그 무렵의 흐름이었던 청년단체 활동을 하다가 진보정당에 꿈을 심었던 현이야. 한때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광천공단 차체공장에 위장취업을 했지만 오래 못 버티고 나왔던 부끄러운 경험이 있어. 그 뒤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지.

 네가 살면서 나를 얼마나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한때 386세대라는 말이 있었지. 지금은 비난 받는 우스게말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이런 우리들의 지난날과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노라면 억장이 무너지고, 참담하다 못해 어디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 들어가고 싶기만 하단다.

 언젠가 네가 내 직장에 찾아와서 민노당에 10만 원을 기부해주면 연말정산에서 공제해주니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후원금 좀 받아주라 한 적이 있었지. 많이 못해줘서 미안해. 너희들이 당원 배가운동을 할 땐 내게도 가입을 권했었지. 한데도 나는 어쩐지 정당이라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주저했었는데,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형이 “아 동생이 권하면 한나라당이라도 가입해야지, 것도 아니고 민노당이니까 괜한 폼 잡지 말고 가입하라”고 해서 떠밀리듯 가입했었어. 지금은 것도 그만뒀지만.

 다른 데서 살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 옆에 모기지론 빚을 얻어 이사를 왔던 현아. 바로 그 뒤 나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귀향해버렸고, “형 보고 이사 왔는데, 형은 가 버린가”라며 그 지역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던, 이번에 제수씨까지도 구의원에 출마했다가 아깝게 떨어져버린 현아.

 내가 광주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올 때 네게도 같이 가자고 했었지. 그런 방식의 삶은 답이 아니라고. 해서 그동안의 당 활동을 접고 내가 퇴직금을 받아서 사준 트럭과 전동기구들을 갖고 지리산에서 목수 일을 배웠던 현아. 그때 난 광주에서 생각하길, 고향에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와서 보니까 생각과 현실은 천양지차더라. 그래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너를 불러오지 못했고, 그러던 어느 때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예전의 당 활동으로 되돌아갔던 현아.

 한때 민노당이 1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고, 내홍도 많았고, 그러다 누구는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도 됐지. 그런데 뭐가 잘못됐을까? 나는 지난해 총선 때 너희 당에서 일어났던 초미의 사건에 관심을 무지 많이 기울였었어. 내 청춘의 도시와 지난날의 삶으로부터 멀리 떠나왔지만, 네가 그 태풍의 한가운데 있었으니 너무 궁금해서 촌구석에 살지만 밤마다 인터넷으로 내막을 시시콜콜 파고들었지. 동안 넌 얼마나 힘든 고통의 날들을 보냈는지.

 

 흘러간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

 

 하지만 객관적 사실과는 별개로 기득권자들은 물론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까지도 여론재판으로 통진당의 이마 위에 주홍글씨를 새겨버렸지. 이제 곧 재판을 받아 당이 해산될지도 모르고. 그게 또 이번 선거에서 크게 먹혀들어갔고. 더 말 해 무엇 하겠냐? 흘러간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한 법. 슬픔도 힘이 된단다. 설사 당이 해산되더라도 나는 네가 지금에 더해서 앞으로 더 많이 달라지기를 바래.

 이 땅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없어.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그 층위는 너무 편차가 커. 자신을 남과 비교해버릇 하지 마.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우리, 함께’에 못지않게 ‘나’에게도 더 집중해봐. 지난 시기 우리는 개인보다 집단에 너무 치우쳐 지냈어. 각각의 개별적인 삶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건강해야 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말장난이 아니야. 이기적이거나 방종과도 달라. 그렇게 더 완결성이 높은 개인들이 만나서 이루는 사회를 한번 쯤 깊이 생각해봐.

 시골에서 겨우 혼자 몸이나 간신히 건사하고 지내는 주제에,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멋쩍다. 해가 진다. 삵쾡이가 물어가지 못하게 닭도 몰아넣고, 내 한해 일용할 양식인 토마토와 고구마, 감자랑 옥수수를 심어놓은 텃밭에 물을 줘야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밥 세 그릇씩 꼭꼭 씹어 먹고 기운 내기 바란다.

윤정현<시인>



윤정현은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3년째 강진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시인이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고, 지금은 `잘 살기’를 꿈꾸는 미학에세이를 쓰며 여러 가지 방식의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명발당’은 필자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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