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옛 선비들은 ‘반일독서(半日讀書) 반일정사(半日靜思)’로 공부했다. 하루의 반은 글을 읽고 하루의 반은 조용히 생각했다는 말이다. 글은 참되게 읽고, 생각은 넉넉하게 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그러기 쉽지 않지만, 그르지 않으니 그래볼만 하다. 글 읽는 시간을 아까워 않고, 산책하며 생각하는 때를 떡하니 내놓는 글벗 임동휘가 있다. 뭉뚱그린 마음을 쉽게 들려주는 말벗이기도 하다. 그와 만남은 늘 기다려지고 설렌다.

 

 ▶언젠가 막걸리 서너 잔에 ‘노래 하나 들려줌세’하고선 허리를 곧추 세우고 먼 곳을 바라보더니 ‘6월16일 그대 제일(祭日)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하며 목소리를 쫙 깔았다. 한번만 더 들려 달랬더니 ‘나 같은 똥통이 사람 돼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하며 속에서 소리를 끌어올렸다. 그날 모자람 없이 대여섯 번은 들었고, 만나면 졸라서 자주 들었다.

 김영동의 ‘멀리 있는 빛’이란 노래다. 잔잔한 물결 같은 흐름에 느긋한 목소리가 징소리처럼 마음을 울린다. 김영동은 ‘어둠의 자식들’(이장호 감독)이란 영화에 딱 어울리는 ‘어디로 갈거나’란 노래를 집어넣었고,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감독)에서도 이야기에 잘 들어맞는 ‘조각배’를 들려주었다. 김영동은 가슴에 애달프게 묻어 둔 우리 가락을 잘 솎아 올려 우리의 삶에 스며들게 한다.

 

 ▶가슴을 후벼 파는 노랫말은 김영태의 ‘멀리 있는 무덤’이라는 시다. 갑작스럽게 죽은 친구 김수영 시인의 제사가 다가오자 김영태는 ‘생시(生時)와 같이 그대를 만나’는 것처럼 여겼고, 자기의 시집을 죽은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사람 몸이 만들어내는 은유인 춤을 좋아한 김영태는 춤으로 삶을 느끼고 삶을 춤으로 엮었다. 춤으로 시를 썼고 시로 춤을 추었다.

 ‘풀이 눕는다’로 잘 알려진 김수영 시인은 멀뚱하니 키가 커서 그랬는지 말이 없었으나 가짜와 거짓은 말[詩]뿐 아니라 몸으로 밀어냈다. 사람들이 두려워 꺼리는 일에도 거침없이 바른 말을 했다. 이승만 독재 무리와 친일 떼거리에도 서슴없는 비판과 욕을 토해내기도 했다. ‘혁명은 고독하다’고 말한 김수영은 시(詩)란 가슴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며,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도 했다.

 

 ▶처음 노래를 들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슬픔 앞에서 서러워만 하는데, 안타까움을 넘어 죽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아예 죽음이 된다.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 ‘침을 뱉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하며 현실로 돌아와 몸부림을 친다. 두 번째 들을 때는 걷고 싶었다. 켜켜이 묻은 그리움을 떼작떼작 들쳐보고 다시 쌓으며, 나 또한 죽음과 이야기 나누고 싶고, 그대가 되어보고 싶었다.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들을수록 그림이 그려졌다. 김영태는 김수영과 나지막이 말했으나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 입은 꼴이나 ‘모가지만 달랑 물 위’로 떠오르는 대목에서는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았다. ‘겹버선 신고’ 생각 없이 뛰어다니는 이웃이 눈에 들어왔고, ‘냉수만 퍼마시다 지레 눕’는 가난한 우리들이 나타났다. ‘머리맡에 그대의 깊은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애쓰고 아무리 애써도 빌고 아무리 빌어도 도로 아미타불인 대한민국에서 한숨만 나오기도 했다.

 

 ▶눈물이 날 때도 있었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었다. ‘멀리 있는 무덤’ 그리고 ‘멀리 있는 빛’은 ‘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어떠우’라 물으며 끝난다. ‘싹수’는 잘 될 것 같은 낌새고, 전라도말로는 ‘싸가지’라 하는데 싹수의 센 말쯤 되겠다. 김영태 시인이 죽은 김수영 시인한테 ‘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달라는 것은 아마 더는 희망을 찾을 길이 없어서 그랬을까?

 읽고 생각한 것을 나누어주는 임동휘, 품속에 묻은 가락을 끌어내주는 김영동, 그리움으로 속살까지 근육으로 다듬는 김영태, 굽히지 않는 몸과 글로 깨우쳐주는 김수영. 싹수가 싱싱한 사람들이다. 새싹을 죽이는 싹수가 노란 나라님이지만 우리는 싸가지가 넘실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글·삽화=김요수



김요수님은 월간 샘터에 2년 동안 연재했으며 <딱좋아 딱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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