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로 파고드는 문화예술을 위해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사진=광주시>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마련한 `지역사회보장/사회보장제도 모니터링단 워크숍’에 다녀왔다. 내가 일하는 곳이 `강진문화복지종합타운’인데, 아마도 이 일을 주관하는 이들이 그 이름을 보고 내게 `문화복지’에 대한 국정모니터링을 해달라고 한 것 같은데, 기실 내가 맡고 있는 일은 그 중 아주 일부인 `강진아트홀’의 큐레이터에 국한돼 있지만 어찌어찌해서 모니터링을 하게 됐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행정일선에서 실제 운영 중인 `문화바우처제도’ 같은 제도적 차원의 문화복지 분야였다. 하여 나는 농어촌지역에서 문화와 예술이 결합될 수 있는 제안 중심으로 두 개의 정책 제안을 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관련자들의 의견을 듣고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거였다.

 하나는 노인일자리사업의 지역별 특화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벤치마킹’에 익숙한데,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사람마다 닮은 점들은 너무 많지만, 차이점을 찾기 어려운 것에 착안한 거였다. 일테면 노인분들이 하고 있는 교통정리나 학교안전 활동, 가로화단 정리 같은 농어촌형 일자리사업을 지역마다 특화해보자는 것이다.

 

 노일 일자리 지역별 특화 제안

 

 예를 들어 어르신들 중에는 한문에 익숙한 분들이 많으니까 그분들로 하여금 `향토사료조사단’ 같은 일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구촌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문화적 격변이 심한 곳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난 시대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급속하게 훼손되거나 사라져가고 있는데, 그런 활동이 가능할까 하는 제안이었다.

 이것은 도농과 청장년이 뒤섞일 수 있다. `향토사’를 `지역사’로 바라보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에 대해 도시의 청년층들과 협의(설계)하고, 현지의 시간 여유가 있는 어르신들 중심으로 조사하고 이를 축적·정리·분석해서 미래의 전망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지방문예회관의 `문화복지타운화’였다. 전국 어느 지자체나 문예회관을 갖고 있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수도권이나 광역시, 그 인근 같은 경우는 그런대로 운영이 잘 되고 있는 편이지만, 농산어촌은 거기 사는 사람 수 만큼이나 이용도가 낮다.

 프로그램도 지역에서 만들어낸 것들보다는 외래의 우수한 예술작품의 유입에 집중돼 있다. 지금 문체부에서는 이 지방문예회관을 위해 쥐꼬리만큼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공연예술에 치중돼 있고, 그나마 한정돼 있다. 해마다 일종의 `마켓’이라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작품 중에서 몇 편만을 골라 지역에서 공연한다.

 이것은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우수한 예술작품을 `소외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문화향수권 진작이나 평등 같은 관점 같은데, 기실 그 장점에 비해 맹점도 많다. 미디어가 수용자를 타자화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좋다고 하는 것을 지역에서 강요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지는 각 지역의 문예회관을 공연장을 넘어선 문화복지의 거점으로 활성화 해보자는 거였는데, 이것은 얘기되지 못했고, 앞의 것만 짧게 얘기됐다. 그것도 `제도 모니터링’이라는 실무적 차원에서 진행돼서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알아서 할 일’로 정리되고 말았다.

 문화사회라는 담론은 IMF사태 전후에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 같고, 문화복지라는 말도 종종 들어는 본 것 같은데, 구체적 실천은 몸에 와 닿지 않은 느낌이다. 기실 그 자리에 왔으면 좋았을 법한 문화시민단체 일을 하는 이는 바빠서 못 왔다. 내가 내내 그분들을 설득해내기에는 요령부득이었다.

 

 새마을운동처럼 뚝딱? 불가능!

 

 최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짧은 시간에 진행되는 이런 계획적인 방식의 일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을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공동체라는 것이 무슨 새마을운동을 하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일테면 지금도 급속하게 해체되어 가고 있는 마을공동체들은 몇 백 년을 두고 형성된 것들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과 사람이 호혜롭게 어울려 살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체계의 범주를 떠난 미지의 요소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터. 힘을 덜 들이고 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한참 더 낮은 곳으로 `하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작업이 갖는 보편적 차원에서의 효용이 아니라, 공공미술이나 문화복지, 문화사회와 같은 것들을 대중적 실현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돈은 많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회. 그 대부분의 관심이 부의 불균등에 맞춰져 있지만, 기실 삶의 질은 그것들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살 찐 돼지들에게 오페라나 전시회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공의 문화와 예술을 지향하는 많은 이들이 현실의 훨씬 더 미세한 균열들에 파고 들어가 몸을 놀렸으면 좋겠다.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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