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 않은 곳으로의 준비되지 않은 여행

 오랜만에 배에 올랐다. 흑산도와 홍도를 가는 배는 11월 말임에도 만선이었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모두의 머릿속에 바다는 무서운 악몽이었을 터인데, 용케도 지우고 사는지 싶어진다.

 내가 흑산도를 찾는 것은 손암 정약전의 유배지와 면암 최익현의 유배지가 목적이었다. 홍도는 그토록 여러 번 찾았지만 사실 흑산도는 한 번도 들르지 못한 곳이었다. 가까운 후배가 태어난 곳이고, 흑산 홍어는 질리도록 먹고 살았음에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내게 홍도는 그래서 가까우면서도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목포구 등대와 안좌도와 비금 도초를 지나는 내해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외해에 이르면 파도가 넘실댈 것이라 조금 긴장은 했지만, 그 바다도 호수가 되어 있었다. 두어 시간을 보내는 배안에서 대동문화재단에 있는 김만선 기자의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유배’라는 책을 함께 보았다.

 그 사이에 도착한 섬, 막상 땅에 닫으니 발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버스도 보이고, 택시도 보이고, 관광버스도 보이지만, 생각해보니 난 대책 없이 이 섬에 들었다. 섬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넉넉해 도보로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순간의 선택을 감행했다.

 우선 포구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여관을 잡고 주인장과 상의하자는 판단이 그것이었다. 흑산의 포구는 분주했다. 방파제 공사는 끊임없이 땅을 후벼 파고 있었고, 곳곳에는 멸치를 건조하고 있었다. 항구에서 노점을 펼친 여인들은 이 배가 마지막 손님이었는지 모두들 분주히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관광으로 사는 섬은 배시간이 그들의 하루 일과를 좌우 한다는 것, 바다농사를 짓는 곳은 물때가 하루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미 알던 터다.

 이제 거리에는 덜렁 혼자 남았다. 바다는 검게 빛나고, 가을단풍이 세치처럼 끼어든 산도 검푸르다. 산과 바다 모두가 푸르다 못해 검어서 지어진 이름 흑산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여관을 찾았다. 기왕이면 깨끗한 곳, 이제 지어진 곳을 찾았다. 짐을 풀고 내일 아침 택시관광을 요청했다. 20여 킬로를 일주하는데 두 시간 정도이고, 모든 관광코스를 모셔다 주며, 안내까지 해주는 데 6만 원이 공식 가격이란다. 혼자서 6만 원을 내고 돌아야 돼서 좀 큰 돈이지만 세세히 돌 수 있는 편리함도 있으니 쾌히 부탁을 드렸다.

 이제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미 예약이 된 곳으로 들어가고, 나 같은 부류의 여행자는 없는 탓이리라. 다시 여관의 카운터를 찾았다. 회라도 한 점 먹을 만한 곳을 부탁했다.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도 회가 있는 집이 없다. 결국 전복이라도 먹으라면서 자상하게 모셔다 준다. 밥과 전복 5만원, 좀 심하다. 하지만 모셔주기 까지 했는데, 잠시 화를 달래며 아저씨가 광명의 손녀 줄려고 까고 있는 고동을 함께 까 드렸다.

 주고받는 말 가운데 호구조사가 다 이뤄진다. 전복 양식을 하다 잠시 손을 놓고 쉬고 계시다는 아저씨의 삶, 그 가운데로 진입하기 전에 음식이 나왔다. 가격에 손색없는 맛이 선보였다. 다행이다. 싱싱한 갯것이 그대로 나오니 머릿속으로 한창훈의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가 다녀간다.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드리고, 포구를 배회하다 여관에 들었다. 노트북을 가져갔어도 결코 흑산도의 속살이 궁금하지가 않다. 그냥 부딪쳐 보는 거야. 뭐 그런 마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흑산의 주요 관광지와 내 목적지를 꼼꼼히 살폈다. 8시에 시작한 여행이 11시에 끝났다. 함께 해준 기사님은 질긴 손님이라고 했을 것이다. 100여 개의 섬 중에서 무인도가 89개인 흑산군도, 4700여명이 살고 있는 섬, 초등학교 분교 포함해서 7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부터는 도초도나 목포, 광주로 나가야 해서 이곳의 아빠들은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메추리 아빠라는 칭호를 듣는 삶을 이야기 해주는 기사님에게서 시종 신산하면서도 한편으로 희망을 품고 사는 섬사람들의 처연한 삶을 돌아봤다.

 점심, 다시 그 식당으로 가는데 옆집에서 홍어를 손질한다. 애가 눈에 번쩍 뜨인다. 애 얼마냐 물으니 3만 원이란다. 싸주시라고 하는데 지나가던 어제 그 맛난 밥을 주시던 사모님이 눈을 치켜뜬다. 굽히지 않고 샀다. 그리고 다시 그 집에 들려 밥을 먹었다. “혼자 와서 짠해서 맛난 것 해준께 남집 존일 시켜부요. 우리도 다 있당께. 염병, 옆집은 이 동네사람도 아님서 손님 올만하면 홍어 손질함서 내 손님 채가 분당께” 이런 말을 들으며.

 흑산도에서 난 그렇게 여행자도 아닌 관광객으로 속상한 일정을 마쳤다. 어제 먹은 밥까지 다 나올 것을 참으면서. 폴푸셀이 말했다. “탐험가는 발견되지 않은 것을 찾아 나서고, 여행가는 역사 속에서 마음으로 발견한 것을 찾아 나서고, 관광객은 기업가들이 발견하고 대주오하의 기술에 의해 준비된 것을 찾아 나선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은 나를 이렇듯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전고필



`전고필’ 님은 항상 `길 위에’ 있습니다. 평생 떠돌며 살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관광의 핵심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는 눈. 그것들을 찾아 평생 떠돌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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