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여인들의 얼굴

 - 1991 / 중국, 홍콩 / 15세 이상 관람 가 / 123분 / 감독 : 장예모 / 출연 : 공리(송련 역), 마정무, 주기, 조취분

 

 1920년대 중국. 송련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학을 반년 다니다 중퇴하고 계모의 강요로 봉건적인 가문의 후예인 진대인의 첩이 된다. 진대인에게는 여러 부인이 있는데, 잠자리를 같이 하는 부인의 처소에는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전해져 내려온다.

 송련이 넷째 마님으로 들어간 날. 하녀들의 가풍에 따른 시중을 받고 집안에는 즐비하게 홍등이 켜진다. 밤이 되자 홍등 가득한 방에 남편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

 “발 안마 좋았지? 여잔 발이 중요하지. 발이 편안해야 남자를 잘 모실 수 있거든.”

 그렇게 등이 환한 가운데 첫날밤을 보내려는데, 셋째 마님이 아프다는 전갈이 온다.

 아침이 되고 가풍에 따라 위의 부인들에게 인사를 한다. 송련은 발 안마와 홍등이 선택된 날에만 받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송련과 만나기를 거부한다.

 송련은 자신을 모실 연아를 소개받는다. 첩을 꿈꾸었던 연아는 송련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반찬조차 가풍에 따라 남편을 모신 사람이 정한다. 남편의 명을 받을 때도 문 밖에 나와서 받는다.

 

 남편 드는 날 방에 홍등이 켜지고

 

 둘째날, 넷째 집에 홍등이 켜지고 송련은 발마사지를 받는다. 또 다시 셋째 마님이 아프다는 전갈이 온다. 아침이 되자, 셋째는 집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른다. 셋째 매산의 노래를 들으러 갔다 온 사이 남편은 연아와 희롱하고 있다. 화를 내는 송련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처럼 굴지 마. 오는 길에 경단 사다줄게. (…) 발 안마를 기다리는 이가 많다고. 명심해.”

 한때 유명한 가수였던 셋째 매산의 청으로 송련은 마작을 하고, 남편은 둘째 탁운에게로 간다.

 송련이 궁금해 하는 지붕 위 닫힌 쪽방에서는 두 여인이 부정을 저질러 죽었다고 전해진다. 남편을 모신 다음 날, 송련은 다른 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집안의 법도를 깬 것이다.어느 날 송련의 피리가 없어지고, 연아의 방을 들이친 송련은 홍등이 가득 찬 연아의 방에서 자신을 저주하는 인형을 발견한다. 글을 모르는 연아를 위해 주술 인형에 글을 써 준 이가 살갑게 굴던 둘째인 것을 듣고 송련은 충격을 받는다.

 둘째가 머리를 잘라달라고 찾아온다. 딴 생각을 하던 송련은 둘째의 귀를 자르고 만다. 셋째는 부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둘째야말로 사악하고 자신은 상대가 안 된다고 말한다. 임신했을 때 둘째가 음식에 독을 탔다는 것이다.

 “동생이 여기 온지 얼마 안 됐고, 대감이 아직 싫증을 내지 않았지만, 만약 아들을 낳아주지 못한다면 앞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될 거야. 동생은 배운 사람이고 나는 고작 가수지만 우리의 운명은 같아.”

 송련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고 홍등이 방안 가득 밝혀진다. 둘째가 대감의 지시로 송련의 방에 불려가 송련에게 안마를 해 준다. 송련의 속옷에서 월경 흔적을 발견하고 연아는 둘째에게 이른다. 고의원이 넷째를 진맥하고, 거짓 임신이 밝혀진다.

 봉등을 당한 송련은 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아의 방에서 홍등을 꺼내 던지고, 연아를 집안 법도에 따라 처벌할 것을 첫째 부인에게 요구한다. 벌을 받다 쓰러진 연아는 대감의 지시로 병원으로 옮겨진다.

 둘째에 대한 총애가 이어지고, 셋째는 노래를 부른다. 송련은 셋째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른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야?”

 “형님의 노래를 들으러 왔어요. 듣기 좋네요.”

 “좋긴, 그저 연극일 뿐인데. 잘 할수록 남을 속이는 거야. …… 하지만, 못하면 자신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거지. …… 자신마저 속이지 못한다면 귀신을 속여.”

 “사람은 살아 숨쉬고, 귀신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다른 거죠.”

 “동생, 사람이 귀신이고, 귀신이 사람이야.”

 “점등, 멸등, 봉등.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이 집안에 도대체 사람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 그들은 모두 고양이나, 개나 쥐 같아요. 분명 사람은 아니에요. 지붕 위의 방에서 목이나 매는 게 낫겠어요.”

 

 거래관계 같은 부부 관계 못 벗어나

 

 스무살 생일을 맞은 송련은 술을 청하고, 술을 가져 온 하녀에게서 연아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송련은 큰형님의 아들 비포와 술잔을 나누며 푸념을 한다. 송련은 술에 취해 매산이 고의원을 만나러 갔다는 얘기를 하고 만다. 술이 깬 송련은 매산이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다. 송련이 훔쳐보는 가운데, 매산은 여인들이 갇혀 죽은 지붕 골방으로 끌려간다. 송련은 골방에서 죽은 매산을 발견한다. 죽은 매산의 방에 불이 켜지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귀신 소동이 벌어진다.

 다음해 여름. 다섯째가 들어온다.

 “저 사람은 누구지?”

 “넷째 마님인데, 미쳤어요.”

 중국의 전통극인 변검을 보면 얼굴 바뀜이 현란하다. 사람의 나이 50세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아둔한 탓인지 천명은 도무지 모르겠고, 세상의 권력이 변검의 얼굴 바뀜처럼 화려하게 변신한다는 것 정도만 알겠다.

 루소는 불평등을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신체적 불평등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불평등이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난다는 자체도 여전히 불평등의 기원이 되고 있다. 루소는 정치적 불평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권력을 더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고 했다. 정치적 불평등은 눈에 드러나는 신체적 불평등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여 치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신체적 불평등에 대한 표출은 곧바로 인간 됨됨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 불평등은 은밀하고 조직적이다.

 좀 배웠다는 송련도 신체적으로는 여자로 태어났고, 정치적으로는 힘없고 가난한 처지이기 때문에 권력을 쥐고 있는 진대인의 입장에서는 남자를 잘 모시기 위해 발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늘 주변을 맴도는 죽음과 거래관계와 같은 부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송련의 마지막 모습은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송련의 얼굴을 걷어내면 매산이나, 또 다른 평범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얼굴은 시공을 뛰어 넘는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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