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잊으라

▶1957 / 스웨덴 / 12세 이상 관람 가 / 90분 / 감독 : 잉마르 베리만 / 출연 : 빅토르 쉬오스트롬(이삭 보리 교수 역), 비비 앤더슨(사라 역), 잉그리드 튜린(며느리 마리안 역), 군나르 뵈른스트란드(에발드 역)



 50년 간 의사 생활을 해온 이삭 보리 교수는 50주년 기념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로 한 전날 밤 이상한 꿈을 꾼다. 꿈속 거리를 헤매던 중 그는 시침과 분침이 없는 시계를 발견하고, 마부 없는 장례마차를 만나게 된다. 마차에서 관이 떨어지고 관속에 누워있다 박사의 팔을 잡아끄는 시신은 바로 자신이다.

 악몽에서 깬 교수는 비행기를 포기하고 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며느리 마리안이 동행한다. 며느리가 담배를 피우자 교수는 한마디 한다.

 “시가는 남자들에게 허락된 악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자에게 허락된 악덕은 없나요?”

 “눈물, 임신, 이웃 험담하기.”

 교수는 자신이 지켜온 원칙들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버님은 냉혹한 이기주의자예요. 다른 사람 말엔 귀를 막고 본인 생각만 따라가시죠. 노인 특유의 수완과 매력으로 잘 위장하고 계실 뿐이죠. (…) 세상은 아버님을 위대한 박애주의자로 보겠지만, 하지만 가까이서 아버님을 보아온 저희들 눈을 속일 순 없어요.”

 교수는 며느리를 20살까지 자신이 여름에 살던 곳으로 이끌고, 정원에서 산딸기를 발견하고는 생각에 빠진다. 교수의 눈에 갑자기 산딸기를 따는 약혼녀 사라가 나타난다. 뒤이어 바람둥이 남동생이 나타나고, 젊은 시절의 모든 인물이 나타난다. 사라는 동갑인 이삭이 완벽하고 훌륭한 남자지만 자신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자책한다.

 교수는 한 소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현실로 돌아온다. 소녀는 자신을 사라라고 소개한다. 사라 일행도 차에 동승하고 함께 가던 중, 커브 길에서 과속으로 나타난 차 때문에 사고가 난다. 결국 상대 차량의 부부도 차에 동승하게 된다. 남편은 시종 부인을 빈정거리고 마리안은 결국 두 사람을 내리게 한다.

 교수는 가는 길에 96살 노모를 만나기 위해 잠시 고향에 들른다. 주유소에서 돈을 내려하자 사장은 거절한다.

 “저희 같은 시골뜨기라도 베풀 게 조금은 있답니다.” (…) “이런 기름으로는 갚을 수 없는 은혜도 있는 겁니다.” (…) “이 동네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세요. 박사님의 은혜를 잊은 사람은 없답니다.”

 교수는 자신을 살피는 며느리를 의식하고 한마디 한다. “이 동네를 괜히 떠났군.”

 교수를 만난 노모는 손자에게 줄 시계를 내미는데, 시계에는 시침과 분침이 없다. 일행은 다시 출발하고, 교수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사라는 교수에게 거울을 들이대며,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한다. 사라가 아이를 안고 들어간 집안을 살피던 교수는 기이한 재판정으로 인도된다. 의사로서의 자격을 묻는 심문에서 그는 연이어 실수를 하고, 무능력자라는 판결을 받는다. 판관을 따라간 곳에서 이삭은 자신의 차가움이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셨어요.”

 “처벌은 뭔가?”

 “처벌? 글쎄요. 일상적인 게 되겠죠.”

 “일상적이라면?”

 “네, 외로움이요.”

 이삭은 잠을 깬다. 마리안은 남편 에발드도 시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마리안은 에발드가 아이를 거부했던 때의 일을 이야기 한다. 마리안은 이삭이 노모를 만나고 공포를 느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분은 고대의 여인이죠. 시간 속에 꽁꽁 얼어붙은 여인, 죽음보다 더한 공포일 거예요. 그녀의 아들. 두 사람 사이에는 영겁의 시간이 존재하죠. 그는 자신이 산송장이라고 얘기하죠. 에발드도 추위와 고독 속에서 죽어가요. 뱃속의 아이를 생각했죠. 그래요 추위와 죽음과 고독 밖에 없어요. 여기서 멈춰야 해요.”

 식이 끝난 날 저녁, 창밖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사라와 친구들이다. 그들이 떠나고, 아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이미 쌓아놓은 벽이 너무 두껍다. 이삭은 다시 꿈에 빠져든다. 사라가 이삭을 이끈다. 낚시를 하고 있는 젊은 이삭이 그곳에 있다.

 ‘산딸기’는 영화사에 이름이 올라 있고,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완벽한 한 인간이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만들어 놓은 지옥을 다루고 있다는 주제적 측면은 그리 독특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꿈’이라는 장치와, 우연히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삭 보리 교수가 안고 있는-인간 모두가 안고 있는-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영화의 큰 백미가 거기에 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놀라운 인과관계를 도출해낼 수도 있으리라.”는 교수의 독백을 통해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맥락을 이야기 한다. 그 인과관계는 다름 아닌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이다.

 교수는 꿈과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다. 꿈은 오랫동안 집단의 영역 속에 있었다. 집단의 운명을 가르는 신탁은 사제와 제사장들의 꿈을 통해 나타났고, 꿈에는 신들의 뜻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제사장과 사제들의 꿈이 그러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제사장 개인의 욕망을 위해 꿈은 언제든 변주될 수 있었으리라. 신탁의 꿈은 자신만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꿈은 그처럼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프로이트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 문제는, 지나치게 꿈을 성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으로 해석하려던 데 있었다. 어느 하나의 틀만으로 사물이나 생각을 재단하면 오류는 필연적이다. 영화 속 교수의 꿈은 프로이트의 꿈과 제사장의 꿈이라는 두 시각 모두를 갖고 보아야 제대로 이해되는 꿈이다.

 하나의 원칙은 위험하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연적인 요소들에 의해 엮어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청년은 “삶과 자연의 혈관에서 아름다움이 억제된다면 그 근원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라고 노래를 했다. 원칙과 완벽이 낳는 문제를 웅변하고 있다. 이삭 보리 교수가 원칙을 고수하며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만들어 놓은 것을 짧고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스크루지가 생각났다. 다른 이에게 비친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잘못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행운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다. ‘산딸기’를….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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