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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의 ‘명발당’에서]`무덤’으로 가는 5·18 기록물
기록관 운영 주제 결정을 국가에 맡길 판
윤정현
기사 게재일 : 2015-02-09 06:00:00
▲ `연합통신’ 나경택 기자가 촬영한 필름 원본 관련 사진기록물.<사진출처=5·18기념재단 홈페이지>

 금남로 옛 가톨릭센터에 개관 직전인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운영주체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월3일, 광주시(인권평화협력관실)와 시의회, 5·18기념재단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가졌는데, 시에서는 작년 말 국가기록원의 회신공문을 들어 ‘시가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재단에서는 ‘모아진 자료들 모두가 국가기록물이 아니며, 지방기록물관리기관도 설치·운영되지 않은 채로의 시 직영은 재단의 고유업무와 중복(약화)이 불가피하므로, 재단 중심으로 위탁 운영해야 한다’고 한다.

재단은 한 국가기록원 종사자의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시의 기록관 직영은 안 맞다’고 했다. 시의회는 중재 입장인데, 위탁이냐 직영이냐를 가를 시의 조직개편안 처리를 앞두고, 재단 측에 위탁운영이 가능한 ‘명확한 근거가 담긴 공문을 가져오라’ 했다.

최근 언론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감독 해촉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광주의 수많은 전문가·활동가들이 이에 대해 갖는 관심에 비해, 기록관에 대해 공개된 그들의 관심은 아예 없다. 전당과 문화도시는 오월정신을 문화적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기록관 운영이라는 이 중차대한 문제보다, 이유야 어떻든 ‘자리’에 관심이 더 많다는 뜻이다.

늘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광주 사람들의 처신은 십년도 더 지난 문화도시 만들기를 더디게 했다. 전당 개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아카이브란 말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기록관을 보고는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먹물들’이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로만 폼을 잡고 몸은 뒤로 쏙 빼기 일쑨데, 대저 ‘지식인’의 말은 없다. 이게 결국 기록관 운영주체 결정여부를 국가기록원에 의지하게 한 것 같다.



‘광주의 심장’ 운영을 광주서 결정 못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5·18이 국가라는 제도에 의해 5·18이 되었나? 나름 공신력을 내세우는 국가기관은 한입 갖고 두 말 하길 꺼린다. 스스로의 말, 나아가 사려 깊은 생각들보다 누군가의 도장이 박힌 공문을 앞세우는 광주의 현실은,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법치주의의 초라한 몰골 같아만 보인다.

‘무덤’이라는 뜻의 박물관에 들어있는 것들은 그곳의 말뜻대로 늘 그 ‘장소가 갖는 특수성’의 의미망에 갇혀있었다. 하여 진일보한 형식의 미술관이 생겨났고, 비엔날레가 생겨났고, 장소가 아닌 방식으로서의 아카이브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의미망이 생겨났다. 그것은 관리보다 활용이다. 5·18의 기록물이 우리 같은 국가제도 즉 행정기관에 맡겨졌을 경우, 그 활용이나 이를 통한 창조는 크게 기대할 게 없다.

‘제도’나 ‘규정’이라는 것 자체가 ‘창조’와 상치되는 데다가, 거의 후진국 수준인 정부신뢰도의 나라, 것도 지자체에서, 빈번하기 짝이 없는 수장의 인사이동과 여러 변곡점들은 그들의 실행력과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기록원의 재구성 기능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지금 기록원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5·18의 기록들과, 국가기록물, 재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모아온 비등록 기록물이 있다. 이것들과 앞으로 또 모아질 기록들은 그 일이 일어났던 한 때의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기억이라는 형태의 모든 시공의 축선 상에 존재한다. 어느 누구든 기록하면 기록이고, 역사라고 하면 역사인 것이다. 기억을 기억하기와 끝없는 재창조, 이는 결코 방기할 수 없는 산 자들의 숙명이다. 오월은 지구촌을 향해 기록하고 재구성해야 할 그 어떤 것이다.

기록관은 광주의 심장이자, 우리가 미래를 길을 나서는 흐릿한 창문이다. 이 중요한 기록관 운영주체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국가기록원의 몇 마디에 의지하는 건 오월정신과 어긋난다. 먼저 광주발전연구원의 의견을 존중하자. 나아가 공청회나 워크숍, 간담회 같은 의견수렴 방식이 결코 최선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백화제방의 지혜를 모으자.

이런 과정 없이, 전임 시장과 재단이사장간의 구두결정만 있었고, 새시장이 들어선 뒤, 재단이 어수선 한 틈을 타, 260쪽짜리 자체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를 대신한 국가기록원의 두 장(20줄)짜리 공문 하나로 방침을 바꿔버린 광주시의 행정절차를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엔 총체적 생활방식으로서의 현대 문화나 아카이브에 대한 말이 한마디도 없다.



백화제방의 지혜 모을 때



불분명한 법리나 절차상의 형식논리에 끌려 다니는 재단 또한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재단을 만든 사람들의 뜻을 기억하자. 기록관 운영에 집중하지 못할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문제의 본질을 향해 그날의 전사들처럼 육박해 들어가, 빨리 그 해결 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광주시민은 ‘사태’가 ‘민주화운동’이게 하기 위해 피눈물이 나는 길을 걸어왔다. 생각하면 눈물뿐인 그 지난한 터널을 지나, 비로소 광주는 시민시장이라는 작지만 오롯한 이정표 하나를 세웠다. 시장이 구체적인 시 행정을 속속들이 알 리 없을 테지만, 부디 지난날의 희생으로 광주의 명예를 되찾고, 법인이라는 제도로 발전시킨 이들의 기억과 그 고리를 땅에 묻어버리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시장이라는 제도는 사람이 자주 바뀐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때의 결정이 참으로 현명했다는 얘길 들었으면 좋겠다. 시린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줘야 할 시의회의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정활동은 ‘잘 사는 것’과 실정법의 중간지점 어딘가에 있다. 귀와 입을 열어서 공복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의 가슴과 바람을 끌어안고, 현실의 벽마저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깊고 넓은 혜안을 가져줬으면 정말 좋겠다.

윤정현



윤정현은 강진에서 태어나 80년부터 30년간 광주에서 살다가 귀향해 7년째를 맞고 있다. 시인이자 미학을 공부했고,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서남해안문화컨텐츠를 통해 두루 `잘 살기’를 바라며 지낸다. `명발당’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이다.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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