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등장인물 뿐

 - 1976 / 미국 / 15세 이상 관람 가 / 124분 / 감독 : 시드니 루멧 / 출연 : 페이 더너웨이(다이애나 역), 윌리엄 홀든(맥스 슈마커 역), 피터 핀치(하워드 빌 역), 로버트 듀발(프랭크 해켓 역)

 

 USB 방송국의 앵커 하워드 빌은 뉴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으나 1969년 막을 내리기 시작하고, 결국 1975년 해고당한다. 빌은 마지막 뉴스에서 자신의 해고 소식과 자살할 것임을 말한다. 회사가 발칵 뒤집히고, 경쟁사들은 빌 사건을 뉴스에서 다룬다. 회사에서는 빌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고심한다. 하워드에게 마지막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제 마지막 뉴스입니다. 어제 제가 공식 언급했던 자살 발표는 분별없는 짓이었습니다. 더 이상 할 헛소리가 없어서 그랬죠. (…) 우린 항상 헛소리를 하며 살죠. 말할 거리가 바닥나면 우린 헛소리를 꾸며내고…. 우리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도 헛소리죠. 인간이 고귀한 존재라 신은 필요 없다는 것도 헛소리죠. 이 도살장 같은 세상에서 인간이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작자도 헛소리하는 겁니다.”

 회사는 다시 한 번 뒤집힌다. 하워드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제작국의 다이애나는 빌을 이용해야 한다고 사장을 설득하며, 자신에게 프로그램을 맡겨달라고 한다. 해켓은 경영진과 빌의 재출연 문제를 상의한다. 보도부는 반발하지만, 빌은 수락한다.

 `하워드 빌 쇼’의 인기가 떨어지자 다이애나는 쇼에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며, 자신이 제작해야 한다고 맥스를 설득한다. 빌은 다시 방송을 하게 되지만 신경과민 증세는 더욱 역력해진다. 맥스는 기절한 빌을 집으로 데려가지만 빌이 사라진다. 해켓은 맥스를 해고하고 프로그램을 다이애나에게 맡긴다. 잠옷차림으로 비를 맞으며 회사에 나타난 빌은 선지자처럼 떠들어댄다.

 “전 불황과 경기침체, 인플레이션, 러시아인들 문제와 범죄 문제에 대한 대책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건 먼저 여러분이 화를 내야한다는 겁니다. `젠장, 난 인간이야. 내 인생은 가치가 있다고!’라고 하면서 말이죠. (…)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외쳐요!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시청률이 치솟고, 사람들은 빌의 주문대로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다이애나는 과격 좌익 단체인 `세계해방군’ 프로그램 방영을 본격화한다. 하워드 빌의 뉴스쇼에는 이제 점성술사와 심령술사가 등장한다. 빌이 방송에 나선다.

 “UBS의 회장인 에드워드 조지 러디가 오전 11시에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뒀죠. 우린 이제 큰일 났어요! (…) 왜 큰일이냐고요? 6200만의 미국인들이 이 프로를 시청하고 있으니까! 책을 읽는 국민들이 전체의 3%도 안 되니까! 신문을 읽는 국민들은 15% 이하니까! TV로 진리를 얻으니까! TV를 통해서가 아니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으니까! 이 바보상자가 복음이요, 진리의 원천이니까! 이 상자는 대통령, 교황, 수상을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신이 부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전능한 존재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이 상자를 조정하면 큰일 나는 거죠. 그래서 에드워즈 조지 러디의 사망이 큰일이라는 겁니다. 이제 이 회사는 CCA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회사가 전능한 상자를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세요. (…) TV 속에는 진리가 없어요. TV는 놀이공원이라고요! (…) 우린 여러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들만을 꾸며내거든요. (…) 우린 환상을 제조합니다. 모두 진실이 아니죠. (…) 여러분은 상자 속의 세계가 현실이고 당신 인생은 환상이라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현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TV에서 보이는 대로 행동하며,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아이도 TV에서처럼 키워요. 생각하는 것도 TV의 영향을 받죠. 이건 집단 광기입니다! 사실은 당신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환상인데 말이에요! 그러니 TV를 꺼버려요. 지금 당장 꺼버려요.”

 해켓은 경영진 회의에서 UBS의 약진을 호언한다. 맥스와 다이애나의 관계가 급진전된다. 맥스는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녀가 맥스를 사랑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맥스는 이렇게 답한다.

 “그녀가 감정을 느끼기나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는 TV 세대야 `벅스 버니’를 보면서 자랐지. TV를 통해서 현실세계를 배웠어. 그녀는 우리 모두가 연기할 수 있는 몇 편의 시나리오도 구상했어. 마치 영화처럼 말이야. 맙소사, 우리 꼴 좀 봐. 지금 그걸 연기하고 있잖아.”

 하워드 빌은 방송에서 아랍과의 연루설을 거론하며 CCA와 해켓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CCA의 총수 젠슨은 빌을 소환한다.

 “자네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렀어! (…) 국가와 민족은 존재하지 않아. (…) 오직 전체를 다스리는 시스템만이 존재할 뿐이야. 광대하고, 냉정하며,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다국적 자본 조직이지. (…) 이 세계를 지배하는 건 바로 국제통화제도야. 그게 오늘날 자연의 법칙이야. (…) 21인치 화면에 대고 미국이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떠들어대? 미국은 존재하지 않아. 민주주의도 그렇지. (…) 기업들만 존재할 뿐이야. (…) 세계는 대규모 기업과 같아서 냉엄하게 결정된 경영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야.”

 하워드 빌 문제로 다이애나가 폭발한다. 다이애나는 해결책으로 `세계해방군’을 시켜 빌을 방송 중에 살해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의 미디어 현실을, 사회 현실을 현재의 일처럼 명쾌하게 그려낸 뛰어난 영화다. 우리의 삶의 양식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도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자본주의, 다국적기업, 민족과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등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 대사를 통해 말하고 있다. 그 덕분에 대사 하나하나가 곱씹을만하다. 모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몹시 서운할 따름이다.

 4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보상자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하워드의 말 그대로를 우리는 살고 있다. 등장인물만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말이 들린다. “문제는 시청률이야, 바보야!” 시청률의 뒤에는 돈이 있다. 시청률을 걷어내고 나면 진면목인 돈이 드러난다. 문장은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돈이야, 바보야!”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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