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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산책]제주에서 배워온 시각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5-04-08 06:00:00
▲ 태평양의 시작 마라도 그리고 등대.

 ‘노마드’라고 하니까 ‘역마살’이라고 한다. 고상한 말로 천성을 호도하지 말라는 어느 선배의 충언이다. 어쩌겠는가. 몇 년 참았으니 이제 쉬어주는 김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들 찾아 다녀야 되지. 하지만 호구지책도 마련해야 하니 그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간간히 참여해야하는 무슨 회의와 모임 같은 사이의 틈을 노린다. 대구로, 서울로, 춘천으로, 부산으로, 수원과 서천과 목포와 제주, 군산 등을 다녔구나 싶다. 그중에 며칠전 제주에 간 것은 그간 수없이 다녀온 것 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언젠가 제주산 토박이 선배에게 “선배 나 나이 먹으면 제주와서 가이드 하고 살까?”라고 했더니, 그 선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제주가 무슨 쓰레기 하치장인줄 아니”라고. “왜요”라는 물음에 “너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 모두 편안한 말년 띵가띵가 놀면서 제주사람 하인 부리듯이 할려구”라는 대답이다. 덧붙여 “힘 쓸 때 와서 한곳에 정착하며 가진 재주를 다 털어놔야지”라는 말이 따랐다. 결국 그리하지 못했다. 이미 노쇠한 기운이 찾아오는 날들이 시작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여튼 그런 나를 보기좋게 넉다운 시킨 선배 한분이 제주시 표선의 가시리라는 마을에 정착을 하고 산다. 제주 말로는 이런 사람을 이주민이라고 한다. 제주 본토박이 사람들은 제주에 사는 사람을 세가지 등속으로 분류한다. 제주사람, 육지나갔다온 사람, 그리고 육지것들. 최근에 어느 지역에서는 육지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본토박이를 압도해서 속이 끓는다는 소식도 접했다. 이런 저변에는 제주가 지닌 육지에 대한 뼈아픈 기억들이 누대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가시리 마을로 입주한 선배는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마을 개발 사업의 디렉터가 되어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마을이 감내해온 시간과 공간을 조응해온 역사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제주 최고의 말을 키우는 갑마장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마을 공동체 사업과 동시에 제주의 역사이자 마을의 역사인 말 박물관을 건립했다. 전국 최초의 리 단위 마을에서 건립한 박물관인 셈이었다. 어렸을 적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을 들었던 터였지만, 여행사 시절과 문화판에서 일하던 때 들렸던 제주의 말은 대부분 “승마 체험”을 위한 말 뿐이었다. 그러다 종마장의 말을 방목하면서 널찍한 초원에 자유로운 말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제주에 몽골 마상쇼가 들어오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몽골의 침탈로 인해 겪었던 수난은 강화도와 진도와 제주로 이어졌으며, 그로 인한 폐해는 당시로 끝난 것이 아니라 누대로 이어졌는데 그런 제주 역사의 혈흔이 자본에 의해 테마공원으로 환생하는 아이러니라니. 그런차에 개관한 제주 조랑말 박물관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제주의 자존을 다시 확립한 일이라 할 수 있는 쾌거였다. 그렇지만 자생해야 하는 박물관인지라 운영이 만만치는 않았다. 무엇보다 가시리라는 지역은 접근성이 수월하지 않고, 중산간지대라 이렇다할 관광자원이 밀집한 곳도 아니며, 일반적인 관광목장처럼 여행사와 리베이트를 주는 영업 방식도 아니어서 더더욱 어렵지만 이주민이면서도 본토박이 만큼 제주를 아끼는 마음으로 지탱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선배의 처소에 들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4월초 제주여행의 테마를 야생화에 두었다고 하니 “민오름, 큰 사슴이 오름, 내창” 과 같은 곳을 권해주었다. 하여 큰사슴이 오름을 배회하며 이런 저런 꽃들과 만나다 몇 년간 궁금했던 숲을 찾았다. 사려니 숲 못 미쳐 S자 형으로 급하게 회전하는 길섶의 계곡이었다. 어느 곳보다 복수초의 군락이 우거진 곳이었고, 흐르는 물을 따라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한 곳이었다. 어렵게 “제주 허” 넘버의 차를 두고 찾았더니 그야말로 꽃대궐이었다. 복수초는 기본이었고, 노루귀, 박새, 괭이눈, 족도리풀 등이 발 내밀 틈을 주지 않았다. 곶자왈과 오름과 습지, 계곡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런 꽃잔치 또한 제주의 무한한 자원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오진 마음으로 광주에 돌아와 서귀포의 문화원에서 받았던 책을 읽었다. “바다중심의 미래와 해양전략”이라는 주강현교수의 특별기고가 있었다. 대저 육지중심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눈에 제주는 나처럼 쉴곳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 이상 어떤 가치를 생각했던가 싶어지며, 오늘 일본의 고교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명기하는 이 상황까지 가도록 방치한 것이 누구의 잘못이었던가. 바로 바다를 일군 이들을 물짠것들이라고 비아냥했던 그 뿌리 깊은 선민의식 탓 아니었던가 후회가 막급했다. 해남의 땅끝을 끝이 아닌 시작이라 하듯, 제주는 태평양을 향한 우리의 전초기지 아니었던가. 다시 제주를 찾을 때는 우리 지도를 뒤집어서 가야겠다. 이 비좁은 땅이 아니라 대양을 보는 눈으로 말이다.

전고필



`전고필’ 님은 항상 `길 위에’ 있습니다. 평생 떠돌며 살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관광의 핵심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는 눈. 그것들을 찾아 평생 떠돌고자 합니다.

가시리 조랑말박물관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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