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공장, IT기업들까지 가세
농민단체·전남도 반발 어쩌나?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반미력(半彌勒) 시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 그곳에 야채공장을 짓겠다구요?”

 2035년의 광주광역시는 눈에 띄게 활력을 잃고 있었다. 전남지역보다는 나은 형편이지만 인구는 줄어들고 있었고, 경제는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고, 젊은이들을 붙잡아 둘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었다. 지역에 법인을 두고 있던 전국적 유통기업인 E마트나 L마트의 매출도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광주광역시의 주요 인구 밀집 지역을 제외한 도시 곳곳에서 슬럼화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특히, 오늘 반미력(半彌勒) 시장과의 면담을 청한 유통기업 광주 현지법인 사장이 지목했던 시 외곽의 한 지역은 더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할 정도로 황폐화되고 있던 지역이었다.

 사장의 요지는 그곳을 개발하여 지역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것이다.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런데 그곳에 설립하려는 것이 야채공장이라니…. 기존의 대형마트를 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대형마트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냈다보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야채공장이라니…. 반미력 시장은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화장실을 좀 다녀오겠노라 하고 잠시 자리를 떴다. 밖에서 수행원과 차를 마시고 있던 정책 보좌관이 중간에 나오는 반 시장을 보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시장은 정책보좌관을 눈짓으로 한적한 곳으로 불렀다.

 

 자동화 시스템에 고용창출 가능할까?

 

 “E사에서 A지구 노는 땅을 이용해 사업을 하겠다는데, 야채공장을 짓겠다네….”

 “타당하기는 한데, 농민단체와 전남도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겁니다.”

 “아직도 그렇겠지? … 대기업에서 또 다시 시도를 하는 건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요. 이익만 보이면 달려드는 존재들인데요. 그리고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반대 여론도 예전 같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일단 듣기만 하시지요, 시장님.”

 반미력 시장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사장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규모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실제 차지하는 대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층별화 될 것이고, 10층이라면 1만 평씩 해도 10만 평의 농장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예, 맞습니다. 공간도 아주 효율적이 될 겁니다.”

 “시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세금, 그리고 일자리 창출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말이지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벤츠인가 베엠베인가가 독일 정부에 외국에 있던 공장을 다시 자국으로 가지고 오겠다고 했어요. 독일 정부에서는 반색을 하고 각종 지원을 했지요. 공장이 문을 열었는데, 90% 이상이 자동화된 거예요. 일자리는 독일 정부가 상상했던 수준이 전혀 아니었어요. 도움이 안 됐지요.… 그러니까 말이지요…. 다음에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장님께서 걱정하시는 게 뭔지 알겠습니다. 자세한 자료를 준비하겠습니다.”

 “그것 말고도 걱정되는 것이 있는데…, 아, 그건 나중에 다시 애기하지요.”

 

 서민들도 공장식 값싼 채소에 유혹

 

 반미력 시장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형태로든 광주광역시에는 이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작용의 영향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전국의 농민 수가 줄어들면서 반대 여론의 힘도 전만 못하지만 결코 돌파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A사처럼 야채공장을 짓겠다는 제안이 표면화된 적은 없었다. 그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내놓은 제안일 것이다. 이런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을 때는 그들이 이곳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을 광주에서만 소비하려는 계획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일이 잘못된다면 광주는 전국의 농민들에게서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거부한다고 해서 그들이 사업을 접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 잃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반 시장은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야채공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었다. 이미 일본은 20여 년 전에 전자업체인 후지쓰·도시바·파나소닉 등 IT기업들이 야채공장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도 2025년 쯤 부터 IT기업들과 대형 유통체인들이 합작으로 야채공장 설립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정치인들도 전국 농민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 동안 전면적인 `야채공장’은 사실상 기술력이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 때문에 저지돼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야채를 생산하는 개별농장들이 IT기술을 접목하여 공장화 된 것도 반대하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공장화에 투입된 자금이 적지 않았다. 자신들의 파산을 눈앞에 두고도 참을 사람은 없다.

 상황 변화는 어려운 경제 여건이 만들어냈다. 한국은 2018년 또 다시 신흥국들을 덮친 금융 위기 이후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20여년 가까이 지속된 장기침체가 새로운 경제 환경을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시민단체와 농민단체 등 반대하는 측에서는 땅이 만들어 낸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시위를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 다수의 소비자들은 채소공장에서 만든 값싼 채소를 거부감 없이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농민들이 만들어내는 야채도 이제 더 이상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기업이 하느냐, 자영업자인 농민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대기업인 유통체인으로서는 자신들이 야채공장을 직접 운영할 경우, 여러 측면에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주주들도 드러내놓고 지지의사를 얘기하지 않았지만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하나의 돌파구, 단 하나의 돌파구,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돌파구인데…”

 

 생산능력 상실 소비자로만 남는 인간들

 

 반미력 시장은 정책보좌관을 불렀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내 결정이 20∼30년 전 동네슈퍼와 잡화점들, 피자가게, 빵집들을 대부분 문 닫게 했던 그때의 재현이 시작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이번에는 그 피해자들이 농민들이 되겠지. 파장은 더 클 거고….”

 “맞습니다, 시장님.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년 동안 `야채공장’이란 터에 조그만 조약돌 하나씩을 얹어왔습니다. 임계점에 달하면 시장님이 얹어놓는 조약돌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얹어놓은 조약돌과 무게는 똑같습니다만, 모든 것을 뒤바꾸게 될 겁니다. 상전이*의 마지막 변수가 되시는 거지요. 그럴 용기가 있으신가요?”

 “야, 그러지마. 너무 무섭지 않냐 !”

 “무서우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막말로 우리가 정치가지 선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선구는 진짜 싫습니다!”

 “짜식이 꼭, 옳은 말을 무섭게 하지 않으면, 꼬아서 얘기를 한단 말이야! 너 보면 꼭 누구 생각난단 말이야, 얌마!”

 “혹시, 그….”

 “넌 꼭 확인하려고 그러더라, 집에 들어가라, 들어가!”

 정책보좌관을 보내고 반미력 시장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같은 크기로 갖고 있어야 제대로 된 존재일 수 있다.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단지 소비자로만 존재한다면 그는 타인의 이익을 위한 존재일 뿐이다. 한사람 한사람에게서 독립적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생산자의 지위를 앗아가는 지금의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 세상인가? 앞으로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무수한 개인들로부터 너무 많은 권리를 빼앗아 기업과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상의 존재들에게 넘겨주었다. 자업자득이다. 반미력 시장의 얼굴에 어떤 결정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천세진<시인>

 ※상전이 : 물리학 용어. 물이 수증기가 되는 것처럼, 물질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자극으로 인해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물질은 변수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전체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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