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기다리는 부부

 ※2014년 / 109분 / 중국 / 감독 : 장예모 / 출연 : 진도명(루옌스 역), 공리(펑완위 역), 장혜문(단단 역)

 

 춤을 마친 단단은 선전대로 호출된다. 그곳에는 엄마도 이미 호출되어 있다. 모녀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며 끌려가 10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아버지 류옌스의 탈출 소식을 듣고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단단은 단호하게 입장을 밝히지만 펑완위는 주저한다.

 단단은 뛰어난 춤 실력에도 불구하고 주연 선정에서 탈락하고, 비오는 거리에서 서럽게 운다. 그 비속에 루옌스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연립주택에 숨어든다. 옌스가 문을 두드리지만 완위는 문을 열지 못하고 단단은 아버지를 거부한다. 옌스는 벽지에 메모를 남기고 떠난다. 단단이 체포조와 만나는 것을 본 완위는 옌스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완위가 음식과 이불 등을 챙겨 옌스를 만나러 가지만, 두 사람이 만나기 직전 옌스는 결국 체포조에게 붙들리고 만다.

 

 문화혁명 종식되고 루옌스가 돌아오고

 

 ‘붉은 낭자군’ 공연에서 단단은 밀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우칭화-발레극 ‘훙써냥쯔쥔(紅色娘子軍)’의 주인공. 국공 내전(1927년 4월∼1950년 5월)기에 하이난 섬의 가난한 처녀 우칭화(吳淸華)가 공산당에 입당해 낭자군을 이끌고 혁명에 나선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문화대혁명 4인방이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내였던 장칭(江靑)이 ‘8대 모범극’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문화대혁명 당시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다.-역을 맡지 못한다.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루옌스가 돌아온다. 역에는 단단이 마중을 나와 있다. 단단은 무용을 그만두고 방직공장 직원이 되었다. 옌스는 집안 곳곳에 ‘문 잠그지 말 것’과 같은 메모들이 붙어 있고, 책상에는 체포되기 전날 메모를 남겼던 벽지가 간직되어 있다. 문을 들어선 완위는 옌스를 마치 출장을 갔다가 며칠 만에 온 사람처럼 맞는다. 옌스는 완위에게서 이상함을 발견한다. 완위는 갑자기 팡아저씨라 부르며 그를 내쫓는다. 단단과 리주임 등 모두가 모여 설득하지만 완위는 끝내 옌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옌스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내에게 5일에 온다는 편지를 쓴다. 완위는 5일이 되자 역으로 옌스를 맞으러 가지만 끝내 옌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옌스는 아내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며 차분히 노력한다. 자신이 쓴 편지를 이웃이 되어 읽어주기도 한다. 5일이면 완위는 늘 역으로 향하고, 옌스가 뒤따른다. 세월이 또 흐르고 옌스는 자신을 마중하러 나가는 완위를 인력거에 태우고 역으로 향한다. 옌스는 루옌스란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완위 옆에 눈을 맞으며 서 있다.

 역이라는 한 장소에서 옌스와 완위, 단단은 가족이지만 서로 엇갈려 있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의 어떤 흐름은 평범한 관계를 평범하지 않게 만든다. 인간이 구축한 관계 중 인류사를 수놓은 무수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 가장 끈끈한 관계가 가족관계다. 그러나 ‘가족’도 사회적 관계임은 분명하고, 역사적·사회적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끈끈함과 가족이 갖고 있는 지고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손 댈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1966∼1976)은 이름처럼 문화적 혁명을 가져 온 사건이 아니었다. 행동대원들이었던 홍위병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설익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이전 세대를 단죄했다. ‘미숙’이 ‘성숙’을 단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제2의 ‘분서갱유’ 같은 사건이었다. 분서갱유도 정치적 이유로 식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책을 태운 것은 책이 정적들의 탄생 배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문화대혁명도 정적들을 쳐내기 위한 정치적 이유가 배경이었고, 이름과는 달리 중국에 문화적으로 엄청난 손실과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이데올로기가 ‘가족’에 끼친 충격

 

 ‘5일의 마중’은 문화대혁명이 문화의 상실이라는 거시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옌스는 아내의 기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팡씨를 찾으러 가지만 팡씨 또한 그의 가족들에게 당이 빼앗아 돌려주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있음을 확인한다.

 완위는 다른 사람은 모두 알아보면서도 사상범으로 끌려갔다 돌아 온 남편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 기억상실의 배경에는 가족을 만나러 온 옌스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남편을 알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죄의식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을 볼 때마다 문을 열어주지 않은 그 날이 떠오를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기억 속에서 남편의 얼굴을 지워버린 것이다. 완위는 단단의 밀고를 용서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5일만 되면 완위는 돌아오는 옌스를 맞기 위해 역으로 향한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가족’은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관계지만 늘 상처받고 흔들릴 위험에 처해있다.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보면 완위와 옌스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기다림은 ‘가족’을 지켜나가는 하나의 명징한 답을 보여준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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