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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진 풍경과말들]‘런치박스 The Lunchbox’
잘못 탄 기차
천세진
기사 게재일 : 2015-12-07 06:00:00
▲ 영화 `런치박스’.

- 2013년 / 104분 / 감독 : 리테쉬 바트라 / 출연 : 이르판 칸(사잔 페르난데즈 역), 님랏 카우르(일라 역), 나와주딘 시디퀴 (셰이크 역)

 

 일라는 남편에게 보냈던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것을 알게 된다. 일라의 도시락을 먹은 사잔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공을 건네 달라는 동네 아이들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사잔은 저녁식사를 하는 아랫집을 바라보고, 아이는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사잔을 발견하고는 매몰차게 문을 닫는다. 사잔은 도시락이 식당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일라는 자신의 가족과 누워서 천정의 선풍기 팬만 쳐다보고 있는 윗집 아저씨 부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모는 팬 때문에 남편이 산다고 믿거든요. (…) 아저씨는 팬만 보고 남편은 핸드폰만 봐요. 다른 것은 없다는 듯이…. 사실 그런지도 모르죠.”

 일라의 편지에는 삶에 대한 회의가 가득하다. 사잔의 편지에도 이야기가 실리기 시작한다. 일라는 사잔의 충고대로 둘째 아이에 대한 계획을 꺼내지만 남편은 반응은 부정적이다. 사잔은 여자와 딸이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다. 도시락이 배달되고, 안도 속에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자살한 여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가득하다. 사잔도 답장을 한다.

 “(…) 그렇게 밤을 새우고 나서야 내가 찾던 게 뭔지 깨달았어요. 일요일마다 아내가 TV를 볼 때, 난 밖에서 자전거를 고치거나 담배를 피웠죠. 그러다 한 번씩 창문을 보면 TV 스크린에 비치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어요. 아내는 똑같은 농담에도 웃고 또 웃었죠.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그때 계속 돌아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라에게서 남편의 외도로 괴롭다며 부탄으로 가고 싶다는 글이 온다. 사잔은 함께 가고 싶다는 답을 보낸다. 일라는 만나자고 제안하지만 약속 장소에 사잔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잔은 빈 도시락을 받고 편지를 보낸다.

 “(…) 욕실에서 냄새가 났어요. 할아버지가 샤워하고 난 후랑 똑같은 냄새였죠. 할아버지가 있는 것 같았죠. (…) 저 혼자였는데, 늙은 할아버지 냄새가 났어요. (…) 어제의 로또를 사는 사람은 없어요. 사실 그때 나도 식당에 갔어요. (…) 당신은 젊어요.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죠. 잠시나마 나도 꿈꿀 수 있었어요. 그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일라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친정으로 달려가 엄마를 위로한다.

 “배가 많이 고프다. (…) 아침도 못 먹었어. 아침 준비하던 중이었어. 전부터 항상 걱정이었지. 네 아빠가 죽으면 난 어떻게 되나 하고. 그런데 지금은 그냥 배가 고파. 처음엔 사랑이 넘쳤어. 너 태어났을 때. 그런데, 몇 년 동안 네 아빠가 너무 싫었다. 아침마다 밥해 줘야지. 약 먹여야지, 목욕 시켜야지, 밥, 약, 목욕, 밥, 약, 목욕……”

 일라는 사잔을 찾아가지만, 사잔의 후임자로부터 명퇴 후 나시크로 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나시크로 향했던 사잔은 집으로 돌아온다.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다. 아래층 건너편 집의 식사를 바라보는 시잔, 전에 매몰차게 문을 닫았던 아이가 손을 흔들고 사잔도 손을 흔든다. 사잔이 주소를 들고 도시락 배달부 사이를 누빈다. 일라는 사잔을 향해 편지를 쓰듯이 이야기 한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데요.”

 일라와 대화를 나누는 남편은 얼굴이 잘 나타하지 않는다. 병석에 누운 일라의 아버지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일라가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층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나누는 사잔과 일라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보이는 이들과는 소통이 되지 않고, 소통이 되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1300만 명의 거대한 인구로 가득 찬 도시 뭄바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잡하다. 인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지만, 도시락을 집에서 배달해 먹을 정도로 자신들의 문화가 고수되기도 한다. 정교한 시계처럼 움직이는 그 시스템 속에서 일라도, 사잔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이들을 갖지 못하고, 주변사람들은 선풍기 팬처럼 쉬지 않고 바삐 돌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팬은 시스템 안에 속한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하고 있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시스템이 잘못 운영된다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인간이 단지 메트로폴리스의 구성원이라면 기차를 잘못 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은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만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탄 기차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이다.

 영화에는 상징적인 동화가 숨겨져 있다. 처음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매몰찼던 사잔이 일라를 찾아 돌아온 뒤에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거인의 정원’을 변용한 것이다. 사잔 또한 거인처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된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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