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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진 풍경과말들]영화 ‘피아니스트’
죽음의 푸가
천세진
기사 게재일 : 2015-12-21 06:00:00

 - 2002년 / 148분 / 감독 : 로만 폴란스키 / 출연 : 애드리언 브로디(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역), 토마스 크레슈만(윌름 호센펠드 장교 역)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2000)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 속 잔혹한 장면들은 가상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 영상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체감될 수밖에 없었다. 실재했던 잔혹성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영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적 묘사나 수사는 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 점령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피셔 총독의 공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유대인 말살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피아니스트 스필만 가족의 삶도 무자비하게 달려가는 시대의 마차에 짓밟히게 된다.

 바르샤바에 살던 50만 명의 유대인이 식별 조치와 생활 분리 조치 후에 다음 수순에 따라 ‘게토’에 수용된다. 독일군에 의한 무차별적 살해와 굶주림으로 인해 쓰러진 주검들은 거리에 널린 채로 방치된다. 2차 이주계획이 실시되고 스필만 가족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기차에 실리게 된다. 기차에 오르기 직전 유대인 경찰단 소속으로 독일군을 돕고 있던 이착이 스필만을 빼돌려 살려 보낸다.

 스필만은 독일군을 위한 건설현장에 동원되어 일을 하며 저항운동에도 가담한다. 그러나 저항이 가진 한계를 실감하고, 알고 지내던 폴란드인 첼리스트 도로타의 도움을 받아 게토를 탈출한다. 게토 차단벽이 보이는 곳에 은신하지만 옆집 여자에게 유대인인 것이 발각되어 은신처에서 도망 친 스필만은 다시 폴란드인들의 도움을 받아 독일군 야전병원 바로 맞은편에 은신하게 된다. 그곳에서 스필만은 잔혹한 처형, 저항군과 독일군 간의 전투를 지켜보며 근근이 버텨간다. 소련군의 압박을 받게 된 독일군은 바르샤바의 건물들을 불태우고 스필만은 인적이 사라진 게토 지역으로 도망친다.

 어렵게 찾아낸 통조림을 먹으려던 스필만은 피아노를 치기 위해 그곳에 들렀던 독일군 장교에게 발견되지만, 오히려 그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것을 알게 된 장교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보전하게 된다. 종전이 되고, 포로가 된 독일군 장교는 스필만을 알고 있던 유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스필만이 그곳을 찾았을 때는 포로들은 이미 러시아의 포로수용소로 떠난 뒤였다. 영화를 보며 파울 첼란(1920∼1970)이 떠올랐다. 파울 첼란은 1920년 루마니아 북부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출생했지만, 그곳이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독일어가 모어(母語)였다. 유태인이었던 파울 첼란과 그의 부모도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의 부모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또한 가스실로 끌려 갈 운명이었지만 경비병의 눈을 피해 가스실로 가야하는 줄에서 살아남을 줄로 도망쳤다. 파울 첼란은 그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동족을 학살한 민족의 언어로 시를 쓰는 것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고통은 시에서도 드러난다.

 “나와 함께 병신이 / 된 나의 말들, 너희 / 나의 반듯한 말들”

 -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 김영옥 역, 청하, 1986, 79쪽. ‘샘은 솟아오르고…’중에서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말했지만 첼란은 독일어로 강제수용소를 노래했고, 아도르노는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러나 파울 첼란은 독일어로 시를 쓰면서도 줄곧 머물렀던 파리에서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러 언어를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로 시를 써야 했던 파울 첼란에 비한다면 스필만은 어쩌면 다행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언어가 없으니 말이다. 파울 첼란은 늘 고통을 들여다보아야 했지만, 스필만은 음악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영상들에 대한 우리의 감성적 교감이 이성적 교감으로 전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진실을 들여다보는 문제는 감성이 아닌 이성의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가 계속해서 같은 고통을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태인 말살을 주도했던 아이히만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했다. 인간이 아닌 시스템이 그렇게 했다는 것에 방점이 주어졌다.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아렌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시스템에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템도 결국은 인간의 작품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수와 잔혹성에서 기억될만한 ‘홀로코스트’의 사례는 언제나 전제적 권력에서 나왔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았지만 이후 법의 의한 통치를 제거해 버렸다. 총통 히틀러는 황제 히틀러와 다르지 않았다. 견제가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스탈린은 자국민을 포함하여 수천만 명을 학살했다. 터키 또한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했다. 모두 견제 없는 절대 권력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성적 교감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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