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도는 사방천지가 꽃 대궐입니다. 지나가는 차량의 살랑이는 바람에도 여지없이 꽃비가 내립니다. 잠시 시내를 벗어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연초록빛 산들엔 하얀 팝콘들이 알알이 뿌려져 있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남도의 꽃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매화가 지고나면 살구꽃과 목련이 피고, 복숭아꽃이 차례로 피는데 지구온난화 영향 때문에 올해는 유독 온갖 꽃들이 함께 피어 있습니다. 그들의 결혼식 피로연 행사에 축하객으로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낙안읍성 가로수인 살구꽃이, 벌교시내 가로수인 별목련이, 순천 선암사엔 500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선암매가, 월등에는 매화와 복숭아꽃이, 구례 산동에는 노란산수유 꽃이, 주암호주변엔 히어리가, 구례 섬진강변의 벚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위해 온갖 화려한 꽃들을 피워냅니다. 결혼식에 필요한 중매쟁이인 벌과 나비, 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이 결혼식에 초대받아 축하객으로 참여하다 보니 내 자신도 몰라볼 정도로 기분이 좋아져 있습니다.

 

선녀가 옷 벗는 모습 같다고 해서… 

 요즘은 나무들이 내뿜는 기운에 의해 사람들의 기운도 달라집니다. 나무에서 연꽃이 피는 목련, 열매로 사람들을 살리고 구한다는 살구나무,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선녀가 옷을 벗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벚나무, 조선왕조의 상징꽃인 자두나무, 꽃차례의 허리가 휘어진 히어리…. 매화와 휘파람새는 붙어다닌다는 속설처럼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숲속을 울리는, 이처럼 보여줄 게 많아서 봄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답사여행의 즐거움을 강조했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서문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인인 유한준이 당대의 수장가인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부친 발문 중 일부입니다. 답사여행의 즐거움을 위해서 먼저 목적지에 대한 사전 공부를 이르는 말입니다. 모를 때 보는 모습과 알고서 보는 내용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는 만큼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봄철 벚꽃의 하얀 꽃잎들이 실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양이 마치 선녀가 옷을 벗는 모습인 것 같다고 생각을 하셔서 벚나무라고(지금도 북한에서는 벗나무라고 쓰고 있습니다)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선녀의 옷 벗는 모습을 바로 아래에서는 민망하기에 차마 보지 못하시고 먼 발치에서 지켜보셨기에 벚꽃놀이를 멀리 하셨다고 합니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화기의 기운이 돋아나기에 우울증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벚나무의 종류는 20여 종이 넘습니다. 수피가 군수물자인 올벚나무가 있고 수피로는 찻통을, 목재로는 팔만대장경 경판을 만든 산벚나무, 버찌가 맛있는 양벚나무, 일본 ‘소메이요시노’ 벚꽃의 모수(母樹)인 왕벚나무 등등이 있습니다. 벚꽃 중에서 꽃이 화려하다는 왕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영)Japanese Cherry, Yoshino Cherry)는 장미과 의 낙엽떨어지는 큰키나무입니다.

 ‘소메이요시노’(왕벚나무)는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자 일본의 봄을 상징합니다. 일본에서는 왕벚나무를 일본원산이라고 하여 동경도의 도화로 지정하고 일본을 상징하는 꽃인 국화(菊花)로 만들어 세계 각처에 왕벚나무 묘목을 보냅니다. 러일전쟁 승전 기념으로 1909년 일본 총리가 미국에 1000주를 보냈고, 1910년 도교 시장이 2000주, 1912년 초 태프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에게 우호친선용으로 보낸 3000여 그루가 워싱턴의 봄을 알리며 명소가 됐습니다. 이후 1965년 미국의 영부인인 버드 존슨이 왕벚나무를 받아들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도입하게 됩니다.

 

제주도, 왕벚나무 자생지 공인 

 우리나라에는 1906년 경부터 진해와 마산 근처에 살던 일본인들이 심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고, 1935년에 제주도 서귀포시 신효동에 김찬익 면장이 가로수로 심은 것을 시작으로 각지에 식재했습니다. 국내에서 왕벚나무가 발견된 최초의 기록은 1908년 4월15일로 서귀포시 서흥리 성당의 프랑스인 타케 신부가 제주도 한라산 북측사면에서 채집된 표본을 당시 장미과 식물의 권위자인 독일의 베를린 대학 코헤네 박사에게 전해주자 학명(Prunus yedoenisis)을 처음 지어 유럽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합니다. 이로써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1909년 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식재되어 있어 벚꽃잔치를 하는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도입된 ‘소메이요시노’ 품종으로 꽃피는 시기는 달라도 형질을 측정해보면 모두 다 비슷해서 꽃피는 4월이면 도로위에 터널을 만들고 가지마다 무더기로 피어나 도심의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은 한겨울의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이 화려한 모습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일본 원산의 ‘소메이요시노’를 심지 말고 우리나라 제주도와 해남 두륜산의 살아있는 보물인 왕벚나무를 심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왕벚나무 가로수길과 공원을 만들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특산종인 왕벚나무의 자생지 3곳(제주시 남원읍 신레리-156호, 제주시 봉개동-159호, 전남해남두륜산-173호)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벚나무가지 자르면 바보, 매화나무 가지 안 자르면 바보”라는 일본속담을 생각하면서 왕벚나무를 심어보고자 합니다.

김세진 <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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