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치동물원 코끼리들.
 유럽 어느 동물원에 갔더니 코끼리사가 바로 도심 아파트 옆에 붙어 있었다. 마치 야구경기장 옆에 있는 아파트처럼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마음껏 코끼리나 기린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005년 봄 어느 날, 서울 도심에서는 아시아 코끼리 9마리가 질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큰 인명사고 없이 끝났고 그 날의 경험은 마치 즐거운 축제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이야기와 노래와 예술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비록 야생은 아니지만 야생과 비슷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어느 날은 멧돼지가 한강을 헤엄치기도 하고, 너구리가 도심 공원 한복판을 배회하기도 한다. 하천 변에 느닷없이 수달이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야생 삵과 길고양이들이 서로 관계를 갖는지 이마에 독특한 세로 줄 무늬를 가진 삵을 닮은 길고양이들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도심에서도 은연중에 야생과 닮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축제에 동원된 동물들…이후엔?

 우리나라 동물원들도 세계 여느 동물원처럼 인구가 많은 도심 안에 지어졌다. 그러다 요즘은 차츰 변두리로 밀려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도심 안에 대다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동물원들은 대부분 지자체 소속으로 국가 정책에 의해 전쟁과 경제발전에 지친 국민들을 위무한다는 취지하에 지어졌다. 애초부터 동물복지 같은 건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차츰 동물원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자 에버랜드를 시발로 민간 동물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즘 대기업들은 관리하기 힘들고 말도 많은 동물원보다 돈 벌기 쉽고 깔끔한 수족관을 주로 선호한다. 대신 동물원은 소규모의 동물농장이나 이동 동물원 형태로 영세한 개인들의 영리 목적으로 주로 생겨난다. 여기에도 물론 동물복지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새로운 경향이 하나 더해졌다. 축제를 위한 긴급 동물원이다. 바다축제, 정원축제, 공룡축제장 등에 소규모의 동물원들이 생겨나고 축제 이후에는 관심에서 밀려난다. 그런 곳에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사막여우, 미어캣 같은 소형포유류와 파충류, 열대어들이 주로 전시되지만 희귀성을 무기로 우리나라에 기존에 없던 값비싼 멸종위기동물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익룡같은 자태를 가진 턱주걱황새(shoebill stork), 인어라 불리는 바다소 매너티, 북극 흰고래 벨루거와 우아하고 거대한 초식상어인 고래상어 등이 그들이다. 축제 이후 그들의 관리와 복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비싸다는 이유로 한 두 마리씩만 겨우 들려와 좁은 유리전시장 안을 맴도는 그들의 힘없는 시선이 따갑게만 다가온다.

 동물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순적이고 자기 얼굴에 침뱉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비판적인 이야기는 대개 자기검열을 통해서 좋은 게 좋다고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동물원이란 곳은 대체로 가장 동물을 좋아한다는 집단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은 여러 우열곡절 끝에 동물원에 들어왔고 그 속에서 동물을 돌보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런 족속들 중 하나이다. 물론 우연히 떨구어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동물원 사람들은 누구보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동물 동향에 관심이 많고 가장 잘 알고 있다. 사육사나 동물원 수의사, 수족관 아쿠아리스트 간에 비공식 네트워크 활동도 활발하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관심도 많고 서로 걱정도 많이 한다.

 

동물 복지 외면한 동물원들의 운명은?

 동물원법, 동물보호법들이 국회에서 정비되고 있다. 내부정화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자꾸 간섭을 받는 것이다. 그들 법의 기본 취지가 궁극적으로 동물원을 없애는 법이라는 극단적인 소문도 들어봤다. 난 직업을 잃더라도 동물원이 자연스레 없어지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작은 동물쇼장이나 동물전시장이 무분별하게 새롭게 지어지는 건 무조건 반대다. 현재 동물원도 선택과 집중으로 좋은 곳은 더욱 좋게 살리고 없애야 할 곳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동약자들의 복지나 생태학습을 위한 공간이라면 동물원이 굳이 우리나라에 수십 개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동물원이 없어지려면 현재의 동물원 동물들을 자연에 잘 적응시켜 내보내야하고 무엇보다 그런 자연환경이 보호받고 보장받아야 한다. 더 이상 동물원이 안 만들어 질 거라는 확신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동물원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류라고 이 지독한 동물 학대의 역사에서 과연 자유스러울 수 있을까?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동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 우선 이런 질문부터가 시작이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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