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야기로의 확장

 홍상수 감독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후 21년 동안 1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는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관찰한 상황과 인물들을 객관화시켜내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자신의 영화 속에 일관되게 펼쳐냈다.

 또한, 홍상수는 일상적 삶의 한 부분을 자기 고유의 영화형식으로 담아내는 영화예술가 이기도 하다. 홍상수영화의 특징은, 인물들의 대화 장면에서 반응쇼트가 없다는 것과 쇼트를 잘게 나누지 않고 상황을 장시간 지켜보는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는 관철되고 있고, 인물들의 대화를 오래 동안 지켜보는 장면의 연출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써낸 옹골찬 대사를 연기자들이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여배우와 감독의 불륜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홍상수’와 ‘김민희’가 나눈 사랑의 흔적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려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홍상수는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는 내용을 객관화시켜내며, 본인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펼쳐지는데, 1부는 영희(김민희)가 유부남 감독과의 만남이 알려진 후 독일의 함부르크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그곳에서 영희는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는 지영(서영화)과 산책하고 대화한다. 이때 영희와 지영의 대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영은 자신이 남편과 결혼해서 산 것은 “필요해서 산거지 원해서 살았던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식이 무섭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는 홍상수 감독 본인의 심경고백처럼 들린다.

 그리고 2부는 영희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지인들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영희의 지인들은 영희가 유부남 감독과 연애한 것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대중들의 관심을 비판하기도 하고, 영희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애쓰는 모습이 비쳐진다.

 이렇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희가 여행을 떠나 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한 후에 남겨진 감정을 추스르고 정리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남다른 것은, 영희라는 인물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배우 영희가 유부남 영화감독과 이별한 후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모습이 절절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1부에서 영희는 자신을 만나러 함부르크에 온다는 그를 “난 안 기다려요”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들키며 어쩔 수 없는 인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2부의 대화에서는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거라도 얻으려고. 다 사랑할 자격 없어요”라고 일갈한다. 그러니까 영희는 이별 후 끓어오르는 그리움을 참아내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직설을 내뱉는 등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다. 이 대목에서 김민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민희는, 사랑에 대한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인 영희를 오롯이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술자리 대화 장면에서 배우 김민희는, 이성이 억누르고 있던 속마음을 술기운을 등에 업고 격하게 토해내며, 한국관객이 한국영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실감의 연기를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그간의 홍상수 영화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1부에서 산책하는 영희와 지영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검은 옷의 남자와 2부에서 호텔의 유리창을 닦거나 등을 보인 채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검은 옷의 남자의 등장을 말한다. 이 설정은 영화 속의 이야기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유별나긴 하다. 하지만 홍상수는, 이별 후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영희의 주변에 검은 물체가 배회하도록 함으로써, ‘검은 것’이 파생시키는 정서를 관객들이 숙고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