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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갈피갈피]경양방죽과 운명 함께 한 태봉산
조광철
기사 게재일 : 2017-05-10 06:00:00
▲ 1960년대 초엽의 신안동 태봉산.

 필자는 지난 두어 달 동안 경양방죽 얘기를 했다. 이젠 그 끝 얘기를 할 즈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지막 얘기도 이미 사라진 것에 관한 것이다.

 경양방죽의 최종 매립 때 신안동의 태봉산을 헐어 매립에 필요한 토취장으로 이용했다는 얘기를 아마도 광주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것이다. 사실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태봉산 철거 계획은 1930년대 일제가 이 일대로 광주역을 이전하고 주변도로를 개설할 때부터 수립된 것이었다. 당시 태봉산은 정확히 두 동강이를 내고 그 자리에 도로를 낼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한 세대가 지난 1960년대 후반 정확히 우리 손으로 ‘실현됐다.’

 

 경양방죽 매립·태봉산 철거 반대 심하지 않아

 

 놀라운 것은 경양방죽의 매립만큼이나 태봉산의 철거에 대해서도 당시 광주의 여론은 생각만큼 반대의견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의 목소리는 대부분 태봉산 일대 주민들의 반응일 뿐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大)를 위해서 소(小)는 희생하자”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 철거를 앞두고 지역신문들은 태봉산 철거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는 몇 번의 기사를 내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거를 목전에 두고 내보낸 이런 기사가 현재 우리가 태봉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그보다 앞서 1930년대 초반 광주에 살았던 일본인 야마모토 데스타로라는 인물이 쓴 ‘광주군사(光州郡史)’라는 책에 실린 내용과 더불어 태봉산에 대해 실낱같은 정보를 엮어 내는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보다 앞서 태봉산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일대를 삶의 일부로 여기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있어 소개한다. 이 기록은 모두 한시(漢詩)로 이루어진 것으로 전남대학교의 호남문화연구소가 펴낸 ‘호남문화연구’ 제14집(1985년)에 실린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원래 이들 시는 1935년 ‘조선호남지’란 책에 실려 있던 내용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문학으로 남은 태봉산 역사

 

 먼저 소개할 시는 19세기 초반 태봉산 일대에 살던 문희탁(文希鐸)이 자신의 정자인 야은정(野隱亭)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필자는 문희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이 시는 그가 태봉산 일대에 이사를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었던 것 같다.

 

 산도 강가도 아닌, 들녘 한가운데라 오히려 숨어살기에 좋은 곳

 꽃과 대나무 우거진 이곳에 새 집 마련하고 나니 시간은 더디게만 가네

 분수를 알면 힘써 일하지 않아도 이곳은 낙토(樂土)

 근근이 농사지으며 농사철 잊지 않으면 그만

 바둑과 술, 그리고 얘기를 나눌 좋은 친구 있고

 시렁에 책이 가득하고 가르칠 아이들 있으니

 연꽃 같은 달, 버들 숲 매운 안개 즐기며

 죽는 날까지 호젓한 이곳의 정취를 즐기리라

 

 다음은 문희탁의 아들인 문상헌(文象憲)이 지은 작품이다. 그 역시 19세기에 이곳에 집을 마련했는데 처음엔 아버지 곁을 떠나 다른 곳에 살다고 이곳으로 이사를 온 듯하다.

 

 새로 지은 집은 작은 언덕을 등지고 서있는데

 가시나무 문짝 너머 들판엔 가을빛이 완연하구나

 달빛을 좋아해 처마를 짧게 만들고

 화초 심으려 길쭉하게 꽃밭도 만들었는데

 땅의 기운이 태봉산을 감싸니 맑은 기운 충만하고

 샘물이 푸른 연못에 들어오니 연꽃향기 더욱 강하네

 십년 만에 드디어 마음 둘 곳을 얻었는데

 어린 대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집이 삐죽 비치네

 

 마지막에 소개할 작품은 문치붕(文致鵬)이 지은 것이다. 이 사람은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국채보상을 위한 헌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시에도 그런 분위기가 살짝 비친다. 물론 그 역시 이 무렵에 태봉산 일대에 살았다.

 

 태봉산 남쪽, 경양방죽 아래의 드넓은 들판

 꽃들까지 활짝 피니 숨어살기에 좋네

 나라를 걱정하듯 봄비는 덧없이 눈물처럼 내리고

 밭을 갈다 돌아와 옛 사람의 글을 읽네

 맑은 연못에 물고기 뛰어오르자 연꽃은 움찔하고

 외딴 마을 닭 울음소리에 대나무가 잠깐 그늘을 거두네

 저 세상과 달리 여기선 그래도 감흥이 많아

 가을 정취에 생각하며 늘그막까지 살리요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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