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의 세계관과 스타일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았을 때부터 계속되었을 이야기 는 그간 나올 만큼 나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대신에 어디선가 들어 보았음직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이야기, 즉 창작이란 정말 말처럼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들을 가지고 뭔가 달라 보이는 이야기를 펼친다는 뜻이다.

 대신, 지금의 시대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변성현은 이 대목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감독처럼 보인다.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서 기존의 영화나 대중문화에서 익숙한 것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작 속에 녹여내고 비틀어버린다.

 이 영화의 중심 설정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관객들에게 경찰이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범죄 조직에 위장 잠입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무간도>와 <신세계>로 대표되는 언더커버 소재의 영화는, 이제 어지간히 만들어서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것이다.한데도 ‘불한당’은 이 소재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란 듯이 이 소재를 비틀어버린다.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그 조직의 2인자인 재호(설경구)에게 접근했던 경찰 현수(임시완)가 중간도 못 되는 지점에서 자신이 경찰이라고 실토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위장잠입을 다루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했다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선회하는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가까워진 현수와 재호가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우정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도록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현수에 대한 재호의 애틋한 감정이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의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브로맨스(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의 코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영화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기존의 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이 영화만의 각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이 아이디어를 ‘첩혈쌍웅’에서 주윤발과 이수현이 각각 살인청부업자와 경찰로 만나 서로에게 끌리는 대목에서 레퍼런스(인용, 참조)를 가져왔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변성현 감독의 걸작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영화 속의 레퍼런스는 생각보다 많은데, 이 인용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금술이 빛난다.

 또한 ‘불한당’은, 감독의 적극적인 레퍼런스에 대한 수용 말고도 영화 속의 인물과 시공간을 남다르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영화이기도 하다. 범죄와 폭력의 세계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임시완을 정글에서 살아남는 하이에나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전혜진이 분하고 있는 천팀장은 기존의 형사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해낸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허벌판에 세워진 교도소나 그곳에서 펼쳐지는 수감자들의 일상과 상황들은 관객들이 그간 보아왔던 기존의 교도소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불한당’은 이질적인 요소가 모이고 모여서 한 편의 총합을 이룬다는 점이다. 변성현 감독은 이 불균질한 요소의 합을 통일시키기 위해 시각적인 측면에서 공을 들인다. 시종일관 밝음보다는 어둠을 강조하는 룩(look)을 관철시키며 인물들의 불안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느와르의 세계관과 스타일로 전체를 수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한당’은 변성현 감독이 동시대의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찍고자 했던 의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새로운 영화냐?라고 했을 때는 주저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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