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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영 영화읽기]‘악녀’
액션은 강력, 서사는 취약
조대영
기사 게재일 : 2017-06-23 06:00:00
 현재 한국영화는 범죄와 폭력에 노출된 남성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대세다. 일일이 거론하기도 벅찰 정도로 한국영화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뒤엉켜 싸우는 남성들의 세계를 주야장천 쏟아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악녀’는 도전적인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여성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는 액션영화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악녀’는 강력한 액션을 펼치는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숙희(김옥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수십 명의 사내들을 대적하여 박살을 낸다. 피가 흥건한 이 압도적인 폭력의 에너지는 한국영화에서도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가 가능함을 선언하는 순간이 된다. 이후에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들에서도 숙희는 다양한 흉기와 무기로 싸우는, 살인병기의 몸놀림을 보여주며 한국영화의 빈자리에 강력한 여성캐릭터를 도착시킨다.

 이는 정병길 감독의 남다른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일찍부터 액션스쿨에서 액션연기를 배우기도 했고, ‘우린 액션 배우다’와 ‘내가 살인범이다’를 거치며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액션시퀀스를 연출할 것인지를 심도 깊게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악녀’는 이러한 정병길 감독의 노력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영화다.

 그러나 ‘악녀’는 정병길 감독의 장점과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의 힘 있고 참신한 액션 장면 연출은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악녀’는 서사를 구축하는 것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정병길 감독은 이 영화가 액션만 돋보이는 영화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이유로 감독은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하는 것에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 공들인 것에 비해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악녀’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병길 감독은 숙희가 그토록 처절하게 적들을 단죄하는 것의 동기를 복수심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감독은 숙희가 인간의 한계 그 이상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도록 복수의 서사를 강화했던 것이다.

 이 복수의 내러티브는 반복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린 시절에 숙희는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이에 대한 복수심이 숙희로 하여금 도입부의 처절한 살육을 자행하도록 했음을 설명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악녀’는 숙희에게 복수의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것은 숙희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와 자신의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모성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서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이 영화는 숙희가 보는 앞에서 연인과 아이가 동시에 죽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제 숙희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리고 모성의 이름으로 복수의 길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첩된 복수의 서사는 치밀하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악녀’는 복수의 이름으로 수렴되는 주도면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숙희에게 복수의 명분을 주기 위한 얕은 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영화 좀 본다는 관객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설정과 액션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창의적이고 힘이 넘치지만 비장함으로 승화되지는 못한다. 마을버스에 탄 복수의 대상을 숙희가 자동차로 추격하여, 도끼를 찍어 버스에 오른 후 사투를 벌이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는 압도적이지만 복수의 정념이 실리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는 반감되는 것이다.

 정병길 감독은 분명 액션과 서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하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시키기에는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솜씨가 아직은 서투르다고 할 수 있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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