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에 바치는 헌사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영화의 빛나는 데뷔작 중 한 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장준환 감독에게 10년을 기다려서야 차기작을 찍을 수 있도록 한 영화이기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데뷔작의 명성을 갉아먹는 구태의연한 영화였다. 이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을까. ‘1987’은 장준환 감독의 새롭게 다잡은 마음가짐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자본에 짓눌리지 않는 감독의 뚝심을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갑다. 대규모의 예산이 투여되는 영화는 자본을 회수하기 위해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컨대 ‘1987’과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인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만 봐도 그렇다. 이들 영화는 한 명의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도록 했다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987’은 여러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퇴장을 거듭하다가 영화의 종착역에 이르는 쉽지 않은 전개 방식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1980년 5월 전두환의 광주학살 이후 신군부의 철권통치에 숨죽여 지내던 한국사회는, 1987년 1월14일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점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1987년 1월14일,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에 불법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다. 경찰은 증거인멸을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고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발표한다. 그러나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수사결과를 믿을 바보는 없다. 이에 맞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들을 속도감 있게 바톤터치 시킨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강행한 검사와 경찰의 협박에도 부검 결과를 밝힌 부검의, 그리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기자, 사건의 참상이 담긴 편지를 실어 나르던 교도관 등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밝히고자 헌신했던 실존 인물들을 영화 속에 호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준환 감독은, 6월 항쟁의 주인공은 한 두 명의 영웅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했던 다수의 시민들이였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연희(김태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한다. 이 인물이 필요했던 이유는, 군사독재의 야만성에 저항했던 분들의 노력을 방관자의 위치에서 지켜보다가 결국에는 역사의 큰 물줄기에 합류하는 다수 대중을 대변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87학번 연희는 광장의 한 복판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1987’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침묵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노력과 군사정권의 만행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았던 국민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 영화는, 항쟁의 주역들 말고도 1987년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시공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1987’은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것에서도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꼼꼼한 고증을 통해 소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어 되살린 1987년 서울의 공기는, 6월 항쟁과 그 시대를 존중하는 장준환 감독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1987’은 1987년 1월14일에서 시작해 6월10일에 끝난다. 이 기간 동안 숨 가쁘게 펼쳐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선택과 행동은 6월 항쟁이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되게 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시대를 담아내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남기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1987’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던 위대한 국민들에게 영화적 보답이 되었다. ‘1987’은 한국영화가 6월 항쟁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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