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의 길, 개로 시작하고, 개로 끝날 듯”

 2018년 올해는 무술년 황금 개띠 해라고들 한다. 한 마디로 누렁이를 황금으로 포장한 것이다. 무술년의 무는 흙과 노랑을 가리킨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황금도 나쁘진 않다. 다만 그 띠 해석만큼 동물보기를 황금처럼 했으면 좋겠다. 내게 동물들은 늘 황금이상이었다. 특히 개는 더욱 그랬다.

 내 수의사 인생은 개로 인해 시작되었고 아마도 개와 함께 끝날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난 내게 가까이 보이고 의지할 동물은 개밖에 없었다. 처음 만난 개는 집 마당에 늘 묶여있던 ‘셰퍼드’였는데 그는 나를 늘 변함없이 반겨주던 막역한 친구이자 든든한 동네 형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하교 길에 와보니 우리 형은 사라져버렸다. 부정하고 싶은 진실이지만 아버지와 그 친구 분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후에도 늘 작은 마당 있는 집에 살았던 우리는 마당 한 켠 개집을 차지할 개들을 끊임없이 키웠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믹스개들을 구해오셨고 그 후에는 내가 친구나 선배들로부터 제법 품종 있는 멋진 개들을 들여왔다. 황금개만 키우던 우리 집은 어느새 동네에서 가장 신기한 개를 키운다고 소문나서 이웃들이 많이 구경 오기도 했다. 그 당시 나도 꽤 개 마니아여서 멋지게 생긴 개 품종에 집착 했었다. 여러 품종의 개를 키웠는데 코카스파니엘, 포인터, 말티즈, 리트리버, 도베르만 등이다. 다만 그들을 집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잘 크고 짧은 제 천수를 누렸지만 그 중에 몇몇 개들은 원인모를 죽음을 맞이했었다. 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채 죽어가는 그들을 지켜보며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생애 처음 치료한 세인트버나드
 
 까불이 코카스파니엘 ‘칸’은 산책을 너무 너무 좋아했는데 녀석은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떨어졌다. 한 마디로 줄만 풀어주면 아무나 따라가 버리고 혼자 멀리까지 달아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나를 끌고 가는 그가 너무 헐떡거려 사람들 없는 틈을 타서 잠깐 숨 쉬라고 줄을 풀어주었는데 앞으로 힘차게 내달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을 찾아 헤매고 문을 열어둔 채 기다렸지만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집에서 개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동물병원에서 잠깐 일할 때 당연히 수많은 품종의 개들을 만났다. 핏불 테리어, 요크셔 테리어, 말티즈, 푸들, 슈나우저, 포메라니안, 퍼그 등등. 원장 일인이 운영하는 영세한 동물병원이라 수의사가 기초적인 털 손질도 다해야 했다. 그것은 치료하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귀 청소해주고 손발톱 다듬고, 그 품종에 어울리게 정성껏 털 깎아 주고 바라보면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생애 처음 치료한 동물은 세인트버나드였다. 보통 알프스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 작은 포도주 통을 목에 걸고 온 산을 누벼 조난자를 구조해주는 마치 곰 같은 강하고 큰 대형견이었다. 그가 아파서 오면 동물병원이 꽉 찼다. 하필 그 개는 구토와 설사병에 걸려 매일 엄청난 오물을 쏟아내 치워야 했다. 이를 악물고 치료를 한 끝에 우리 둘 다 병을 무사히 이겨낼 수 있었다. 진짜 수의사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대목장에선 외롭겠다고 서울 사는 친구가 개를 선물로 가져와 키우기 시작했다. 나도 대자연에서 행복한 만큼 개들도 그 넓은 목장을 맘껏 활개치고 다녀 무척 행복해했다. 골든 리트리버, 콜리, 세인트버나드, 진돗개 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목장 생활을 든든하게 함께 했다. 목장 사람들도 다들 예뻐해 줘서 모두의 개가 되었고 나중에 목장 하산할 때 서로 데려가려해서 애를 먹었다. 개들이 없는 내 목장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비록 젖소 2000마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개처럼 내 영혼의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소외계층 반려견 분양사업의 의미

 목장에서 내려와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는 한동안 개를 키우지 않다가 마침 사무실 옆에 동물보호소가 있어 다시 개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동물보호의 일환으로 소외계층 반려견 분양사업을 ‘개에게는 생명을 사람에겐 희망을’ 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실시하여 그들이 원하는 품종의 개를 선별해주고 건강과 미용을 체크해 준 다음 분양해주고, 어느 정도 사후관리까지 책임져 주는, 나에겐 무척 보람되고 맞는 일이었다. 거기서는 말티즈, 푸들, 치와와, 미니핀, 퍼그, 요크셔테리어 등등 요즘 ‘핫’한 품종의 각종 개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위기의 개들을 다듬어서 선을 보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았으나 그래도 절반 이상을 분양시켜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구해낼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분양하다가 자꾸 개들을 보니 개인적인 욕심이 도졌다. 사무실 앞마당이 꽤 넓어 버림받는 중에 또 버림받는 큰 개들인 까만 레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와 보르조이 한 마리를 분양하여 지금도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사실 사무실 사람들 만나러 가는 일보다 개들 보러 가는 길이 나에겐 더 즐겁다.

 난 동물원에 오래있어 자칭 타칭 야생동물수의사라고 불린다. 주로 코끼리, 기린, 하마 등을 상대한다. 하지만 동물원에서도 시베리안허스키, 풍산개, 진돗개 등을 키웠다. 개들은 무의식간에 지금의 나를 창조했고, 길들였고, 성장시켰다. 요번 누렁이 해를 맞아 그 동안 편한 공기처럼 잊고 지내던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가슴속에 꼭 새겨 넣어야겠다. 고맙다! 세상의 모든 개들아!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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