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동철, ‘하느님의 입김’, 양철북, 2017. 이 산문집을 보면 그가 어떻게 아이들과 같이 잘 놀고, 잘 삐치고, 또 아이들에게 야단맞는지 들을 수 있다.
 탁동철, 십수 년 전이다. 나는 그를 충북 충주 무너미 글쓰기회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달마다 한 번씩 글쓰기 공부를 했다. 전국에서 선생님들이 달려와 글쓰기 교육을 놓고 밤새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때 어린이신문 굴렁쇠를 내고 있을 때였다. 그날 강의는 시였고, 강사는 강원도 양양의 탁동철 선생이었다. 두 어린이 시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탁동철이 가만히 보더니 한마디 하는 거다.

 “두 시 가운데 저는 뒤에 시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앞에 시는 사람 냄새가 안 납니다. 하지만 뒤에 시는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납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이 말은 전에 그가 어느 글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글’로 읽었을 때와 이렇게 직접 그 앞에서 ‘소리’로 들었을 때는 달랐다.

 ‘사람 냄새가 안 난다!’

 나는 이 한마디로 그동안 답답했던 것을 풀 수 있었다. 깔끔하게 잘 쓴 것 같은데 왜 그 시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던가를, 잘 찍은 풍경 사진인데 왜 그렇게 낯설고 차갑고 정이 안 갔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시에서는 사람 냄새가 안 났고, 그 풍경 사진에는 사람과 그 흔적이 없었다는 것을.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면 사진이 아주 많이 실려 있는데, 이 사진을 보면 거의 다 사람이 문화유산 앞에, 뒤에, 곁에 서 있다. 금강산 내금강 보덕암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이 돌층계 쇠줄을 잡고 서 있다. 고은 시인이다. 유홍준은 사람이 없을 때 찍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있을 때, 없을 때는 올 때까지 기다려서 찍는다. 유홍준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그 유산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효과 말고도, 사람이 그 곁에 있어서 유산과 풍경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