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수, ‘토끼 대통령’, 웅진, 1989. 217쪽. 이원수는 정세현이 노랫말을 마음대로 고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는 갔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안 드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1966년 단편 동화 ‘나무들의 밤’을 발표한다. 그는 이 동화에서 자신이 왜 ‘옷 벗은 나무’라 했는지 밝히고 있다.
 동요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럴을 빼놓고는 겨울을 노래한 노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겨울을 노래한 동요 하면 ‘겨울나무’(1957)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익히 아는 노래의 노랫말은 이원수가 쓴 원래 동요하고 다르다. 괄호 안은 바꾼 노래 가사다.
 
 나무야, 옷 벗은(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살아)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무엇보다도 첫구절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바뀐 까닭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이는 정세문이다. 정세문(鄭世文 1923~1999)은 황해도 봉산에서 났고, 춘천사범학교를 나와 1940년대 초 춘천에서 교직 생활을 한다. 그 뒤 서울교육청 음악장학사를 거쳐 1961년에는 문교부 음악담당 편수관을 맡는다. 그가 이 시에 곡을 붙인 때는 음악장학사를 할 무렵이다. 초등학교 ‘음악장학사’의 눈으로 보면 시의 첫구절 “나무야, 옷 벗은 겨울나무야”는 바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초등학생에게 ‘야한 상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듯싶다.
정세문은 1연 3행의 ‘오지’를 ‘찾지’로, 2연 1행 ‘지내’를 ‘살아’로, ‘얘기는’은 ‘얘기도’로 고침으로써, 시의 대상은 ‘관조의 대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시의 화자가 나무에서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시점, 그래서 아이들이 나무에게 ‘오는(오지)’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찾지)’ 것이 되고,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꿋꿋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이 되고, 겨울나무가 꼭 듣고 싶어 하는 ‘얘기는’이 아니라 ‘그냥’ 세상 돌아가는 여러 ‘얘기도’가 된다. ‘피는’을 ‘피던’으로 고친 까닭은 영어 말법 시제를 따른 것이다.
시 전체로 보면 이원수 또한 관조의 눈으로 시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1연 2, 3, 4행에서 시의 화자는 어느새 나무가 되어 있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시의 주체 겨울나무 처지가 되고, 그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누군가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된다. 또, 그렇게 응달에 외로이 서서 추운 겨울을 의연하게 ‘휘파람만’ 불면서 버티는 것이니까, 운명을 체념하면서 어른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로 ‘지내’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2연 1행의 ‘지내’에는 1연 2, 3, 4행 겨울나무의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세문이 이렇게 겨울나무를 관조의 대상으로 바꿔 버렸는데도 어린이들이 이 노래에 감동하고 한 번만 불러도 흥얼거리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선 이 노래 전체에 깔려 있는 겨울나무에 대한 연민, 외로움과 의연함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1연 2행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하는 구절을 읽고 노래 부를 때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을 겨울나무와 동일시하게 되고, ‘아무도’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아도, 겨울나무처럼 의연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살아가겠다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이 시는 그의 호 동원(冬原 겨울동·벌판원)과도 관계가 있다. 아무도 없는 한겨울 들판, 살을 에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런 혹독한 겨울 들판에 옷 벗은 겨울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이 겨울나무는 이원수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독재와 폭정을 피하지 않고 언제나 꿋꿋이 한길로 ‘지내’왔다. 홀로 맨 앞에 서서 어린이문학의 동심주의와 반공주의에 맞서 싸우면서 늘 외로웠지만, 겨울나무처럼 초연하게 ‘휘파람을’ 불며 버텼다. 그런 의미에서 동요 ‘겨울나무’는 그의 문학 인생을 말해 주는 듯싶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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