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나경원은 아주 황당한 말을 한다. 이명박이 한 말, “금년 1월 달에 비비케이(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에서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 말을 ‘주어가 없다’는 말로 보도했다.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글자가 없이 수천 년 동안 입말(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해 왔기 때문에 말과 글의 ‘현장성’ 또는 ‘상호성’이 아주 발달했다. 또 ‘하였다’ 하지 않고 ‘했다’ 하거나 ‘수건을 가져와!’ 하지 않고 ‘수건 가져와!’ 하는 것처럼 ‘준말’이 발달했고 조사(‘을’)를 아주 생략해 버린다. 이것은 우리말의 ‘경제성’이라 할 수 있다.

 현장성(상호성)과 경제성은 우리말의 가장 큰 장점이다. “(너는) 휴가 다녀왔니?” “응. (나는) 부산(에) 갔다 왔어.” 같은 말에서 주어 ‘너는’이나 ‘나는’을 쓰지 않아도 말하는 이와 듣는 이는 바로 알아듣는다. 그런데 서양 말은 청자와 화자가 현장에서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주어나 전치사(‘에’)를 반드시 써야 한다.

 주어와 관련하여 우리말의 특징은 ‘주체가 바뀔 때에만 밝히어’ 적는다는 점이다. 맨 처음에 주체를 밝히고, 그 뒤로도 행위의 주체가 같으면 주어를 안 써도 된다. 그러다 행위의 주체가 바뀔 때 비로소 새 주어를 쓰는 것이다. 이것은 아래 보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옛날에 시골 어느 산골 마을에 가서 한 선비가 사는디. 아주 가난한 선비여. 그런디 ( ) 글은 많이 읽었거든. ( ) 글을 많이 읽었는디 살림이 원청 가난하닝게 조반석도 다 못하고 하리 죽 한 끼니두 먹구, 하리 넘어 가구 잘 먹으면 두어 끼니 먹으믄 잘 먹었다. 그러구 ( ) 그렇게 살어. 그런데 그 선비 친구 한 분이 찾아왔어. ( ) 와서 얘기를 허는디. (……) 그런 얘기를 듣고 그 친구가 간 뒤에 ( ) 가만히 한 번 생각을 해 봤거든.”

 주어가 자주 빠지면 뜻이 덜 분명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말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 깔끔해진다. 편집자 시절 한 작가가 문장마다 주어를 알뜰히 써 왔기에 앞에 한번 썼으면 뒷문장에는 안 써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독자는 그 행위를 누가 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면 틀리는 것 아니냐고, 문장 속에는 주어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영어 말법에 익숙해 있었다. 나경원이 ‘주어가 없다’고 했던 것은 그 또한 영어 말법에 따른 것이다. 나경원의 말에 따르면 “영희가 시장에 갔다. 가서 콩나물도 사고 두부도 샀다. 그리고 집에 왔다.” 이 문장을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영희가 시장에 갔다. 시장에 가서 영희는 콩나물도 사고 두부도 샀다. 그리고 영희는 집에 왔다.” 이렇게 써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영희가’ 걸리적거리는가. 결론은 이렇다. 이명박은 우리 말법으로 말했고, 나경원은 그 말을 영어 말법으로 풀이했다. 그렇다면 왜 어문학계에서는 그 뒤로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우리 어문학계에서 우리말의 가장 큰 특징인 현장성과 경제성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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