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감자 심포니〉(2009)의 한 장면. 왼쪽이 진이이고, 오른쪽이 백이다. 진이는 카지노에서 일하고 백이는 영월에 당구장을 연다.
전용택 감독의 영화 〈감자 심포니〉(2009)가 있다. 돈을 적게 들여 찍은 독립영화다. 전용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직접 ‘절벽’ 역으로 나오고, 강원도 영월 초등학교 동창 유오성이 지역 건달 ‘진한’ 역으로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절벽의 친구들은 모두 전용택의 초·중·고등학교 동창이다.

형과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향을 떠났던 전설의 주먹 백이(이규회)가 어린 딸을 데리고 영월로 돌아온다. 그는 옛날 당구장을 다시 연다. 영월에 올 때 같이 기차를 탔던 진이(장예원)가 당구장에 찾아온다. 진이는 영월 카지노에서 일한다. 진이는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왔다고 한다. 여자 혼자 식당을 가니까 자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고, “밭 같이 먹어 줄래요?” 한다.

이 영화에서는 과장되지 않은 강원도 말을 들을 수 있다. ‘술 한 자 마셔.’를 “술 한 잔 마세.” 한다. 난 ‘마세’를 처음 들어보았다. 또 강원도 정선 출신 김형광 선생이 일본 유학 때 형광등을 발명했다거나 백열등의 백열은 ‘하얀 빛을 발사한다’는 뜻의 보통명사이고, 형광등의 형광은 김형광 선생의 이름을 딴 고유명사라는 구라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웃긴 말은 “공부를 못했는데 머리가 좋다는 건 이 나라 교육 제도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위험한 좌익사상”이라는 말이다. 김형광도 좌익사상도 모두 절벽이 한 말이고, 전용택 표 구라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진이와 백이가 식당에서 주고받은 말이다.

진이 : 이혼했어요?
백이 : 진이 씨 얘기해 봐요.
진이 : 과묵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들 하는데, 난 그런 거 안 믿어. 대개 말 없는 남자들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야. 겪어 보니 그렇더라고요.
백이 : 내 얘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후회 같은 게 남아서 그래요. 그냥 있어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진이 : 맞아. 그건 좀 그래.

백이는 과묵하다. 웬만해서는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 까닭이 얘기를 하고 나면 나중에 후회가 남아서 그런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활자병에 걸린 사람들의 속성이 그렇다. 어떤 모임에 가서 했던 말을 활자로 기억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활자로 떠올린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말수가 적어진다. 요즘 내가 그렇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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