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것이 많다고 좋은 영화인가

 누명쓴 남자의 이야기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단골 소재다. 한 개인이 영문도 모른 채 쫓긴다는 설정은, 사건 전개가 긴박감 있게 흘러가다가 결국에는 주인공이 누명을 벗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히치콕은 긴장과 해소의 드라마로 관객들을 쥐락펴락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소재는 히치콕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골든 슬럼버’역시 건우(강동원)가 대통령 후보의 암살범으로 몰려 절대 권력에게 쫓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장르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골든 슬럼버’는, 장르로서의 스릴러를 추구하지 않는다. 장르영화로서의 정면승부 보다는 온갖 극적인 요소들을 가져다가 상영시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건우가 쫓기는 것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건우와 함께 밴드활동을 했던 친구들의 현재 모습과 과거의 추억을 노출시킨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음모에 빠진 친구를 우정의 힘으로 구해내고자 하는 서사를 완성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영화는 건우와 친구들의 우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면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러니까 음악으로 죽고 살았던 친구들에 대한 사연을 주도면밀하고 끈끈하게 연출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를 소홀히 했다. 이는 결국 극의 후반부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건우가 누명을 벗는다는 이야기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건우의 캐릭터가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도 치명적이다. 착하고 순수한 인물을 표방하고 있는 건우는 현실에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영화 속에서 건우는 순진한 자신을 답답해하는 민씨(김의성)를 향해 “그냥 착하게 살면 안 되는 거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세상모르고 하는 소리다. 속세를 사는 관객들은 이 말을 흰소리로 받아들일 것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때가 묻은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강철중(설경구)이 등장한지 어언 20년이 되어가건만 김건우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의 짜임새는 물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실망스러운 ‘골든 슬럼버’는, 관객들을 혹하게 할 만한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허술함을 덮으려고 한다. 비틀스와 신해철의 명곡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극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강동원이 연기하는 건우가 또 다른 건우와 만나 격전을 펼치는 설정 역시 개연성 없는 이야기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장면 장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많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이음새로 꿰어내지 못하며 추락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영화 속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어렵고, 몰입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제목인 ‘골든 슬럼버’는 비틀스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인 ‘애비 로드’에 수록된 곡이다. 이 노래는 비틀스 해체를 앞두고 멤버들의 우정이 돈독했던 옛 시절을 돌아보는 폴 매카트니의 심경이 담겨 있다. 이를 제목으로 채택한 일본의 원작 소설 역시 이를 염두에 둔 옛 시절의 우정을 환기시키는 서사였다. 이를 영화로 옮긴 한국영화 ‘골든 슬럼버’역시 원곡과 원작의 느낌을 전달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때 음악을 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의 추억을 호출하고, 결국에는 건우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의 만듦새에서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많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골든 슬럼버’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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