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인가 유홍준의 말을 반대로 뒤집어 놓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은 느끼는 만큼 더 깊이 알게 되고, 보이는 만큼 새롭게 알고 느낀다.” 이 말은 지식에 기대지 않고 세상을 보겠다는 나만의 고집이기도 하다. 또 사실 지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꼭 맞는 것도 아니고, 그 지식 때문에 도리어 진실을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경주의 첨성대를 볼 때,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라는 ‘지식(아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지식으로 보게 되면 꼭 그만큼만 보이고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 보이게 한다. 첨성대는 아래 기단에서 꼭대기 정자석까지 9.108미터밖에 안 된다. 아파트 3층 높이다. 우리는 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9미터 위에서 보나 9미터 아래에서 보나 별이 달리 보이겠나, 무슨 차이가 있나, 차라리 경주 남산에 올라 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고 말이다. 더구나 가운데 사각 창을 통해 힘들게 꼭대기에 오르더라도 두 사람밖에 설 수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별을 관측하다 속이 불편하면 다시 그 구멍으로 내려와 볼일을 봐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 천문대가 이렇게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듯,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아는 만큼 안 보이는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