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출구 없음…‘미소’지을 수 있을까

 한국영화에 별종캐릭터가 등장했다. ‘소공녀’의 미소(이솜)가 바로 그 인물이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당 4만 5000원을 받는다. 한데 이 돈을 가지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4500원 하는 담배와 1만 2000원 하는 위스키를 마실 수 없다. 미소는 고민 끝에 자신의 한 몸을 뉘였던 한 칸 셋방을 포기한다. 그러니까 미소는 대다수의 장삼이사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사수하고자 지상의 방 한 칸을 포기하는 인물인 것이다.

 쌀도 없고 돈도 없고 집조차 없지만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미소의 모습은 쉬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인물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는 다수의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미소는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것을 상상하는 인물이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이런 인물이다 보니 친구 집의 청소를 끝낸 뒤 일당을 받으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기색이 없고, 쌀이 떨어졌다며 손을 내미는데도 구걸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지인의 집을 전전하면서 하룻밤을 신세지면서도 민폐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다 집도 없으면서 술과 담배를 하는 게 염치없지 않느냐는 선배의 말에도 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소는 남들 눈에 ‘루저’로 보일지 몰라도 자신의 삶에 당당한 인물인 것이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것, 그가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들 사이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다.

 이에 비한다면, 미소가 하룻밤 신세지며 확인하게 되는 과거 밴드동아리 멤버들의 사는 모습은 자신만의 가치를 잃고 일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더 큰 회사에 가기 위해 링거를 맞으며 버티는 회사원, 시집 식구와 남편의 무관심을 견디며 살고 있는 가정주부, 아내와 살기 위해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아내는 떠나버리고 20년 동안 매달 100만원씩을 갚아 나가야하는 남자, 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언니 등 한때 밴드에서 각자의 악기와 스타일을 갖고 있었던 멤버들은 이제 세속인이 된 것이다.

 이들은 세속도시의 보통시민들이지만 집 없는 미소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역설이 있다. 집시의 삶을 선택한 미소에 비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치를 살고자 애쓰는 이들의 삶이 결코 더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현실에 순응한 밴드 멤버들에 비해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하는 미소의 삶이 더 낫다고 손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영화는 미소와 밴드 멤버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국한하며, 관객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소는 밴드동아리 멤버들의 집을 전전한 후 자신의 방 한 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미소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언덕 빼기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때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 가관이다. 이 동네 집들은 “운동이 필요 없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미소는 더 싼 방을 찾아 지대가 높은 곳으로 향하고, 방값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방은 사람이 살만한 곳과는 멀어진다. 이 장면의 연출은 최적의 공간을 헌팅 했다 싶을 정도로 서울에서 방을 구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실감난다.

 미소가 가진 돈으로 마음에 드는 방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미소가 지상의 방 한 칸을 갖기란 요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빛 찬란한 고층의 아파트를 배경삼아 랜턴으로 밝힌 텐트를 한 장면에 담아낸 연출은 운치 있지만 헛헛하다.

 결국 영화는 미소가 나갈 출구가 없음을 실토하며, 미소라는 인물이 상상력의 소산임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적 인물로서 미소의 가치는 충분하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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