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들의 ‘하숙집 주인’ 윤정모

▲ 윤정모의 청소년소설 ‘누나의 오월’(산하) 표지.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그날 밤 이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여인의 절절한 호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들린다고 한다. 그가 도청을 빠져나온 것이나 여인의 부름을 듣고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매한가지이지만 그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죽는 그날까지도 자신을 책망하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몫을 찾아나갔다.

 광주항쟁 지도부였던 박효선은 곧바로 지명 수배자가 된다. 지명수배 전단지 사진 바로 아래에는 ‘자칭 전남도청 홍보부장’이라 써 있었다. 그는 윤상원이 중심이 되었던 시민투쟁위원회의 홍보부장이었던 것이다.

 박효선은 광주를 벗어나 서울 삼양동 꼬방동네 김지선의 집으로 몸을 피했다. 김지선은 노회찬 의원의 부인이고, 이때 그는 삼원섬유에서 해고되어 삼양동 공장에 다니며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박효선은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소설가 정찬주 집에, 또 황선희 선생 집으로 몸을 피했다. 당시 정찬주는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 교사였고, 황선희 선생은 황석영의 누이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배 생활을 도왔다.

 박효선은 서울에서 1년 남짓 숨어 지내다가 다시 광주로 내려온다. 그리고 윤한봉과 함께 소설가 윤정모 집으로 피신한다. 윤정모는 당시 수배자들을 숨겨주고 돌봐주는 ‘하숙집 주인’이었다. 윤정모는 이 일을 세 해 남짓 맡아 했고, 그들을 만나면서 그의 소설도,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어 갔다. 광주 이야기 ‘밤길’도 이렇게 태어났다. 윤정모는 ‘누나의 오월’ 머리말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거의 박효선 씨한테서 온 것이다. ‘누나의 오월’이라는 제목도 그이의 ‘금희의 오월’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연극 ‘금희의 오월’과는 다르다. 단지 제목만 비슷할 뿐이다.

 ‘누나의 오월’은 초등학교 4학년 이기열의 누나 이기순이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해서 80년 5월에 저세상으로 떠났는지 말해 주는 소설이다. 아버지는 기순이 중학교를 졸업하자 더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둘째 ‘아들’ 기열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다. 기순은 기열의 대학 학자금을 모으려고 기르던 암소를 몰래 시장으로 끌고 가 팔려다 아버지에게 붙잡혀 붙들려 온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뒤, 기순은 집을 나간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 집으로 돌아오고, 이제는 기열을 도시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님도 기순의 말을 따라 기열을 광주로 전학시킨다.(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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