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변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환갑을 앞 둔 이준익은 이 말이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이준익은 매번 도전을 거듭했고, ‘변산’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최근작들이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젊은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변산’은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고향을 떠나 성공을 꿈꾸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병환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와, 가족을 등한시 한 아버지를 증오하고 갈등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결국 화해한다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익은 이 고리타분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래퍼로 설정하며 진부함을 돌파한다. 그러니까 우리시대의 젊은 예술인 ‘랩’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학수(박정민)는 케이블 방송국 Mnet의 힙합 가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에 매회 도전할 정도로 래퍼로 성공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는 이 성공을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우리시대 청춘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가 여섯 번째 오디션 도전에서 즉석으로 풀어내서 노래해야 하는 주제어는 ‘어머니’였다. 이때 학수는 목이 매여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 설정은 학수가 ‘어머니’와 관련한 남다른 사연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학수의 가족사가 드러난다. 아버지는 가족을 보살피지 않았을 뿐더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학수는 고향을 떠나 래퍼로 성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노래를 계속했음을 관객들은 알게 되는 것이다.

 이로서 관객들은 학수가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일찌감치 마음을 닫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낸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학수의 심리와 감정을 랩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영화 중간 중간에 랩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는 학수와 만나게 되며 그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 ‘변산’.|||||

 그러니까 일반 영화의 내레이션이 이 영화 속에는 랩으로 대치되며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랩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준익 감독의 젊은 감각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와 함께 이준익 감독이 영화의 엔딩 타이틀과 함께 배치한 커튼콜 형식의 에필로그 역시 젊은 감각을 견지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러티브를 전개함에 있어 플래시백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내는 솜씨는 감독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변산’은 철없는 남성을 속 깊은 여성이 철들게 하는 영화이기도하다. 그 여성의 이름은 선미(김고은)다. 고교시절 학수를 짝사랑한 이 인물은 학수를 고향에 내려오게 한 장본인으로 세상을 대하는 성숙한 시선을 견지한 인물이다. 선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이런 선미가 “넌 정면을 안 봐”라며 학수에게 칼날 같은 돌직구를 날리는 대목은 현실의 문제를 정면승부 하지 않는 학수를 자극해 낸다. 그러니까 선미는 이준익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성의 위대함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선미의 성숙함 덕분에 학수는 아버지와도, 세상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변산’이 걸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놓고 볼 때 ‘변산’은 미흡한 구석이 있다. ‘변산’은 관객들에게 불필요하다싶게 친절한 설명을 베풀고 있고, 대목 대목에서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영화의 끝에 다다랐을 때 묵직한 감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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