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고인돌’ 이름을 논문에 맨 처음 쓴 사람은 한흥수(韓興洙, 1909∼?)다. 한흥수는 일제강점기 때 유럽에 건너가 고고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1세대 고고학자다. 그는 도유호(都宥浩, 1905∼1982), 손진태(孫晋泰, 1900~?)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인돌을 연구한 학자다. 손진태는 민속학자이고, 한흥수와 도유호는 유럽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전문 학자인데, 두 사람은 해방 뒤 월북해 북한 고고학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흥수는 1935년 ‘조선의 거석문화 연구’ 논문에서 우리나라 거석문화를 선돌, 고인돌, 칠성바위, 독무덤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가 왜 돌무덤을 고인돌이라 했는지는 논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뒤 학자들은 고인돌이란 이름을 자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전히 일본 학자들이 쓰는 지석묘(支石墓) 이름을 더 많이 썼다. 그러다 1984년 한국고고학연구소가 낸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에서 ‘지석묘’를 ‘고인돌’로 하자고 해 지금은 이 이름을 두루 쓰고 있다. 유물 이름을 정할 때는 그 유물의 성격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사실 ‘고인돌’은 그 유물이 ‘무덤’이라는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름은 한번 들으면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 이름이란 점에서 아주 좋은 유물 이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