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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영 영화읽기]‘살아남은 아이’
우리 시대 윤리를 따져 묻다
조대영
기사 게재일 : 2018-08-31 06:05:01
 아들이 죽었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내고 죽었다. 영화는 아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부부가 아들의 명예로운 죽음을 행정 처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눈앞에 아들이 살려 낸 아이가 등장한다. 기현(성유빈)이다. 그런데 기현의 사정이 딱하다. 엄마는 집을 비웠고, 아빠는 딴 살림을 차렸다.

 영화는 이제 힘겹게 일상을 버티고 있던 기현이 인테리어공사를 하는 성철의 밑에서 도배를 배우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해 지고, 미숙 역시 기현에게 정을 주며 이들의 관계는 유사 가족이 된다. 그러니까 성철과 미숙은 기현이가 은찬이라도 되는 양 살갑게 대하며 유사 가족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화가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면, ‘살아남은 아이’는 자식을 잃은 부부가 자식이 구해 낸 아이와 거리를 좁히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는 이 이야기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 기현이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미숙에게 은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현이는, 은찬이가 자신을 구해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친구들이 괴롭혀서 죽었노라고 실토하는 것이다.

 이제, 은찬의 부모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한다. 그러나 은찬의 부모가 만나게 되는 세상의 인심은 모질고도 차갑다. 학교 관계자는 은찬이가 피해자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의사자로 기억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며 상식 이하의 말을 지껄이고, 학부모들은 학교 평판이 나빠진다며 학교에 전화질을 해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은 기현이 혼자서 딴 소리를 한다고 입을 맞춘다.

 이렇듯 세상은, 은찬의 죽음을 애도할 생각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세월호 이후를 환기시킨다. 세상의 몰지각한 인심은 세월호에 대해서 그만 좀 떠들라고 피로감을 드러냈었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고자 떠드는 것이라며 매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은찬의 죽음은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은찬의 부모가 기현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항소는 불기소처분 되고, 그렇게 성철과 미숙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따지고 보면, 이 사단의 시작은 기현이다. 성철과 미숙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잘 추스르려고 했건만, 기현의 한 마디는 그 모든 것을 뒤틀고 헤집어 놓으며, 오히려 이들 부부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철과 미숙은 기현을 데리고 은찬이 사망했던 곳으로 소풍을 간다. 소풍의 목적은, 아들이 죽었던 자리에 기현을 위치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현을 죽이는 것이 자신들의 울분을 해소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성철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감지한 기현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기현이 죽은 자를 따라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제 기현의 마음은 확인되었고, 영화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현의 호주머니 돌들이 하나씩 흘러나오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 돌들은 기현이 물속에 뛰어들기 전에 주머니에 채웠던 것들이다. 그러니까 신동석 감독은 기현의 죄의식을 이토록 힘든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조금씩 덜어주는 것이다.

 이렇듯 ‘살아남은 아이’는, 은찬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으면 조용히 끝날 법도 하건만, 기어코 삶의 진창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연출한다. 그러니까 알량한 용서와 화해로 사건을 무마하기 보다는 피가 철철 흐르지만 진실을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는 쉬운 용서를 허락지 않는다. 대신, 냉철한 직시를 통해 우리 시대의 윤리를 따져 묻는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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