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5>

 일제시대 때 그 유명한 청산리 전투 알지? 그 전투에 나도 몰래 참여했었어. 우리야 뭐 국경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동물인지라 중국이든 한반도든 사실은 다 우리 영토라 할 수 있지. 사람들은 주로 편한 길로 다니지만 우린 나무가 빽빽한 숲속이나 산꼭대기로 모습을 감추고 소리 없이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큰 길로 이동하는 모습을 전망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바라 볼 수 있지.

 참 일본군들이 그때 독립군들에게 하는 짓들을 지켜보면 정말 끔찍했어. 싸우다가 항복을 해도 무조건 총이나 칼로 모조리 도륙해 죽이는 거야. 사냥을 하고 사는 내가 봐도 그건 정말 너무하더군. 우리는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일부러 목이나 척수 같은 급소를 물어서 고통 없이 단번에 죽이는 방법을 택하거든. 근데 일본군들은 죽일 때도 악랄하게 계속 고통을 주면서 사람을 죽이는 거야. 아! 두 번 다시 그런 장면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이런 지독한 일본군에 맞선 싸운 조선독립군 김좌진 장군은 원래 사냥꾼 집안 출신이었지. 좋은 사냥꾼은 닥치는 대로 동물을 잡는 게 아니고 꼭 목표를 정하고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잡지. 한편으론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말이야.
 
▲진짜 사냥꾼은 ‘목표’만 쏘지
 
 김좌진 장군과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어. 난 어느 가을날 금강산에서 경치에 취해 어슬렁거리며 한가로이 돌아다니다 김좌진 장군 총의 사정권에 들어갔는데 그는 나를 일부러 쏘지 않았어. 난 그가 목표한 사냥대상이 아니었거든. 대신 그는 가볍게 나무 뒤로 자기 몸을 숨기고 내가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려 주었지.

 그는 잘 몰랐겠지만 그 때 이미 난 그와 그의 총에서 나는 화약 냄새를 맡았고, 아차! 늦었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한번 생명의 은혜를 입은 거지. 나 역시 그가 가까이 있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서 그가 숨어있는 나무 옆을 살짝 지나쳤지. 그도 사냥꾼의 본능으로 내가 자기를 해칠 의사가 없는 걸 분명히 알았을 거야.

 만주에서 벌어진 치열한 청산리 전투 당시 난 마침 그 근처에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있었지. 산에서 보니 일본군이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고 독립군은 80리 계곡 양쪽에 매복을 하고 있었어. 전방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는 사람이 얼핏 보였는데 바로 금강산에서 생명을 빗진 바로 그 사람이라서 난 좀 놀랬지. 난 그에게 빚을 갚을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전투를 몰래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지.

 일본군들은 계곡으로 전진하기 전에 혹시 매복을 있지 않나 해서 잠시 행군을 머뭇거리고 있었어. 난 그런 일본군들의 후방에 갑자기 나타나 후미에 쳐진 일본군들을 정신없게 만들어 주었지. 일본군 선두는 뒤에서 누가 공격해 오는 줄 알고 서둘러 독립군 매복지점까지 정신없이 전진해 버린 거야. 그리고 계곡 안에서 독 안에 든 쥐들의 형국이 되어버린 거지.

 그 날은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전투가 이어졌어. 독립군은 거의 일본군의 1/10 밖에 안 되는 병력이었지만 현명하고 용감한 지휘관과 절대적인 지형의 잇점에 힘입어 일본군을 대패시킬 수가 있었어.

 전투가 거의 끝나고 부상을 당하여 잠시 나무 그늘에 누워있는 김좌진 장군에게 몰래 다가가 그의 상처를 내 혀로 살포시 핥아 주었어. 순간 당황하던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 호랑이 너! 혹시 금강산에서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지? 우린 그 때 아마 서로를 모른 척 했었지. 혹시 일본군들을 계곡 안으로 쫓은 게 너였니? 그렇다면 네 덕분에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셈이야. 참 세상에 영물이 있다는 데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정말 고맙다!”

 난 사실 그 때 그를 도왔다기보다, 나 역시 이 나라 조선의 호랑이인데 이 땅을 침범한 섬나라 일본군은 나한테도 적이 되니 함께 싸우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
 
▲발바닥 깔개가 된 호랑이들
 
 사람들이 활이나 칼로 우리에게 맞설 때는 정말 가소로워 보였지만, 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우리를 사냥하기 시작 했을 때는 정말 우린 도망칠 수밖에 도리가 없었어. 다 그 놈의 화약의 발명 때문이야. 아무리 사나운 동물들도 먼 거리에서 총을 싸대는 인간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거든.

 독립군들과의 싸움이 좀 뜸해지자 일본군들은 본격적으로 이 땅의 야생동물들을 멸종시킬 계획을 착착 세우기 시작했지. 자기들 나라에는 없는 호랑이나 표범, 늑대, 곰들을 위험하다는 핑계로 이 땅의 혼들을 아예 말살해버릴 의도도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대규모 토벌대(토호군)를 조직해서 본격적인 야생동물 토벌에 나섰지. 그렇게 마구잡이로 잡은 동물들은 다 가죽을 베껴서 그 가죽은 자기나라로 보내서 고관대작들의 방바닥 깔개로 이용하게 했어.

 표범 가죽은 의자 등받이로, 우리 호랑이 가죽은 발바닥 깔개로 자랑삼아 사용했던 거야. 사냥한 것도 부족해서 감히 우리에게 사후에도 그런 모욕까지 준거야. 생각 같아선 토벌대 한 놈이라도 더 물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복수한다고 우리 동료들을 더 많이 죽일 것 같아서 결국 참을 수밖에 없었지.

 그 통에 죽어나간 호랑이나 표범, 곰, 늑대의 수는 거의 1000여 마리가 넘었어. 지리산이나 백두산 같은 깊은 산속에 꼭꼭 숨어 들어간 나 같은 극소수의 동물들만이 겨우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었지.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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