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쌀의 아픈 역사,
계량의 수치로 이해할 수 없어

▲ 일제강점기 군산항 부두에 쌓인 쌀.
 언젠가 교육방송(EBS)에서 제작한 영상의 제목이었던가? 어느 시인이 지은 시의 제목이었던가? 그런데 과연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잡다한 것들’의 무게를 소개하는 블루벌브 프로젝트(Bluebulb Project)라는 웹사이트에는 쌀 한 톨의 무게가 0.029곔(그램), 즉 29㎎(밀리그램)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쌀의 종류에 따라 무게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토 요우이치로의 책 ‘쌀의 세계사’를 보면 한 톨의 무게를 쌀의 종류에 따라 30㎎ 또는 22㎎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2013년 위은이 등이 발표한 ‘국내산 유기재배 쌀의 이화학적 특성과 취반특성 비교’라는 논문을 보면, 현재 시중에서 우리가 사먹는 쌀의 무게를 대략 20~30㎎ 정도라고 했다. 20㎏짜리 쌀 한 포대에는 대략 100만~66만 톨의 쌀이 들어 있는 셈이다.

 쌀 한 톨은 모래 한 알갱이(4.4㎎), 설탕 한 알(0.625㎎), 그리고 소금 한 개(0.0585㎎)보다는 무겁지만 빗방울 한 개(평균 200㎎)보다는 가볍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나 사회에서 쌀이 지닌 가치는 엄청나다. 그것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쌀을 국장(國章)으로 삼은 나라도 많다. 국장은 나라의 문장이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문장은 대개 서구에서 흔한 것이라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다. 그래도 여권 겉표지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장을 볼 수 있다.
 
▲쌀을 국장에, 주화에 새긴 나라들
 
 북한에도 국장이 있다. 붉은 별, 백두산, 수풍댐을 벼이삭과 붉은 리본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벼는 다른 나라의 국장에도 등장한다. 중국 국장에는 다섯 별(오성)과 천안문을 벼와 밀 이삭이 감싸고 있다. 베트남의 국장에는 노란 별(금성)을 벼이삭과 붉은 리본이 싸고 있다. 라오스 국장에는 불교사원인 파탓루앙과 댐, 도로, 논 등을 벼이삭이 두르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국장에는 수련을 벼이삭과 4개의 별 그리고 과거 밧줄의 재료로 사용됐던 황마가 싸고 있다.

 대개 사회주의 국가의 문장에는 벼가 등장한다. 농업이 산업의 중추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주의 국가건설의 주역 중 하나가 농민임을 강조하는, 지금 보면 빛바랜 외침을 강조하는 뜻에서일 것이다. 동시에 몬순의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장에 벼가 자주 등장한다는 특징도 있다. 벼는 몬순, 즉 장마와 관련이 깊은 작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장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벼나 쌀은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50원짜리 동전에는 벼이삭이 등장한다. ‘오십원’이란 글자 쪽으로 고개를 숙인 벼이삭엔 모두 28개의 낟알이 달려 있다. 일본의 5엔짜리 동전에도 벼이삭이 등장한다.

 이들 동전에 벼가 등장하는 것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관련이 있단다. 1960년대 식량농업기구가 창설되면서 식량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주화에 작물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나라마다 주곡을 주화에 넣도록 한 것인데 식량농업기구 회원국의 사정에 따라 벼나 밀이 새겨진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주조된 동전들을 통틀어 ‘에프에이오 코인(FAO coin)’이라고 부른다.

 ‘농도’전라남도의 예전 깃발(도기)에도 벼이삭이 등장했다. 땅을 상징하는 황색과, 바다를 뜻하는 청색을 배경으로 벼이삭이 선연했다. 벼이삭은 잎이 다섯이었고 거기에 달린 낟알은 스물 두 개였다. 다섯은 전남을 구성하는 시를, 스물 둘은 군을 상징했다고 한다.
 
▲영산포, 법성포에서 실려나간 쌀들
 
 쌀은 호남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실 호남 역사의 태반은 쌀과 관련되어 있다. 호남의 오랜 역사를 얘기할 때면 으레 김제의 벽골제를 들먹이고 동학농민전쟁을 얘기할 때면 정읍의 만석보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익산의 성당포, 영광의 법성포, 나주의 영산포에서 실려나간 쌀들은 어디로 향했던가?

 분란이 일자 서슴없이 나주 궁삼면에서 발을 뺐고, 땅이 국유재산으로 환수되는 것을 피해 부랴부랴 자신들이 세운 학교에 농토를 ‘기부’한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은 어떠했던가? 그 나라,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강점 치하가 됐을 때 군산항에 산더미처럼 쌓인 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보다 더 싫었던 게 1950년 농지개혁이라고 여겼던 지주들은 어떠했던가? 그 농지개혁을 피해 번듯한 방조제를 허물어 염전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나라의 곳간’이니 ‘나라의 버팀목’이니 하는 예쁜 말들로만 치장하기에 호남과 호남의 쌀에는 많은 아픔이 깃들어 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그저 디지털 저울 위에 올려놓고 쉽게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호남의 쌀이라면 더 더욱.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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