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장면이 영화 그 자체

▲ 영화 ‘안시성’.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 군사 수천 명이 당나라 대군 수십만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긴 것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이겼는지에 대한 사료는 충분치 않다. ‘안시성’이 흥미로운 것은, 부족한 역사적 기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며 승리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안시성’은 네 차례의 전투가 핵심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복잡한 드라마나 인물 간의 갈등을 조성하기보다, 전투장면을 연출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도입부의 주필산 전투를 비롯해 2번의 공성전(성이나 요새를 공격하고 이를 방어하는 싸움), 그리고 당나라 군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토산(土山) 전투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네 차례의 전투는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전투장면들에서 한국영화의 기술력이 할리우드영화 못지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반갑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에서 마주했던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안시성’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성격을 달리하는 네 차례의 전투를 그 상황에 맞게 구성한 액션의 설계는 생생하고 화려하다. 물론 여기에는 촬영방식과 CG의 신기술들이 총동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조금 우려되는 것은, 네 차례의 전투장면을 위해 이야기와 인물이 복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김광식 감독은 전투장면이 공허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서사와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도 나름의 공을 들였다. 안시성의 성주인 양만춘(조인성)을 인간적인 장군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양만춘을 성민(城民)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소탈한 모습의 덕장으로 접근하며, 양만춘의 인간 됨됨이가 결국에는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주필산 전투 때 양만춘의 도움을 받지 못한 연개소문(유오성)은 양만춘을 역적으로 몰아 사물(남주혁)에게 암살의 명을 내리고, 양만춘은 자신을 찾아온 사물이 밀정임을 짐작하고도 이를 묵과한다. 그렇게 사물은 양만춘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결국에는 양만춘의 사람 됨됨이에 감복된다. 이제 사물은 양만춘의 사람이 되어 연개소문을 찾아가고, 결국 지원군을 등에 업은 양만춘은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이 일화를 통해 관객들은 양만춘의 어진 품성이 결국에는 승리의 밑거름이었음을 시나브로 받아들이도록 이 영화는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안시성’은 네 차례의 전투장면이 겉돌지 않도록 극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기도 하다. 풍(박병은)과 활보(오대환)는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선사하고, 파소(엄태구)와 백하(설현)는 전장의 사랑을 완성하며, 우대(성동일)와 그의 치매 어머니는 효의 감정이 솟아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토산을 무너뜨리는 성민들의 활약 또한 빠뜨리지 않고, 신녀 시미(정은채)가 당나라에 항복할 것을 종용하는 장면도 끼워 넣는다. 그리고 양만춘의 화살이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의 한쪽 눈을 명중시키는 화룡점정의 의식까지를 치른다.

 이렇듯 ‘안시성’은 극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잔재미의 요소가 즐비하다. 하지만 허전함 또한 동반된다. 그것은 각각의 사연들을 깊게 들여다보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에서 멈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식 감독은 필요하다 싶은 영화적 설정들을 극 속에 심어놓기는 했지만, 그 깊이를 담보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이 자잘한 흠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투장면에 가려져 표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안시성’은 전투장면이 곧 이야기이고 캐릭터이자 영화 그 자체임을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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