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6>
한국전쟁이 가져온 동물수난사

▲ 표범.
 단군 이래로 우리 한반도 사람들은 비록 삼국시대에 잠깐 대립이 있긴 했지만, 한 민족임을 자랑하며 살아왔거든. 땅끝 해남이나 북조 끝 압록 강변에 사는 사람들이나 언어나 생각이 거의 일치했지. 그러나 6·25 전쟁 때는 정말 이 땅이 두 개로 완전히 갈라져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참담한 꼴을 봐야만 했어. 그걸 지켜보면서 정말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잔인한 동물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동물들이 이렇게 서로 완전히 갈라져 대규모 전쟁을 했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거든. 난 그 당시 서울의 북한산 근처에 머물다가 남하하는 북한군에 쫓겨 다른 동물들과 함께 낙동강 근처까지 내려갔지.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적당한 산으로 뿔뿔이 흩어졌어. 난 예전에 많이 다녀본 터라 내가 특히 좋아하는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갔지. 그리고 한동안 그곳에서 ‘빨치산’이란 산사람들 근처에 살았었어. 그 당시는 북한군이 연합군과의 전투에 져서 패주하는 중이라 큰 산이라면 어느 산이나 주로 북한군 패잔병으로 구성된 빨치산들이 조금씩 들어와 살고 있었지. 그들은 밤에는 동네로 내려가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다시 산으로 올라와 하루 종일 숨어서 지내더군. 비록 사람들에겐 무서운 존재였을지 몰라도 그래도 산에서 꽤 오래 함께 지내다보니 동물들과는 그런대로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지. 항상 죽음을 목전에 두고 쫓기는 사람들이라 마치 우리와도 처지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우리 같은 동물들은 별로 무서워하지 않더군.

 어느 날 난 내가 사는 동굴 부근 숲속에서 부상당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지. 그는 총알이 다리에 깊숙이 박혀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어. 난 그의 윗옷을 이빨로 물어서 질질 끌고 동굴 속으로 데리고 갔지.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 그냥 끌려오더군. 그리고 며칠 동안 난 날마다 먹이를 구해오고 그의 상처를 까끌까끌한 혀로 핥아 주었어. 그도 좀 여유를 찾자 자기 칼로 상처 안에 박힌 총알 파편을 고통을 참으며 스스로 빼내더군.

 “참 산에 살다보니 별 신기한 일도 다 겪게 되는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너한테 끌려가면서 차라리 호랑이한테 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아무튼 정말 고맙다. 호랑이가 영물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이구나. 만약 살아서 다시 만난다면 그 땐 꼭 이 은혜를 어떻게든 갚을게.”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상처가 회복되자 곧바로 자기 동료들을 찾아 산속으로 떠났지. 그 후에 그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비행기가 뿌리는 삐라 사진을 보니 그가 이 산속의 빨치산 대장이었나 보더라고. 그가 떠난 후 며칠 후에 이 산에 경찰과 군인들이 대규모로 빨치산을 토벌한다고 들어왔어. 그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을 하고 움직이는 물체들은 사람 동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쏴 죽였지. 일제시대에 이어서 6·25 전쟁의 그 수난을 겪으면서 이 땅에 있는 호랑이, 곰, 표범, 늑대, 여우까지 크고 작은 야생 동물들은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단다. 나도 정말 죽어라고 도망쳐서 이곳 오대산 깊은 골짝이로 겨우 피신하여 이제까지 목숨만 부지한 체 겨우 살아가고 있는 거야.

호랑이.|||||

 여기까지 이 호랑이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그의 행적에 관한 것이었다. 한편으론 그럴싸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설마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들기도 했다. 그 후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주로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랑이들이 처한, 전쟁에 폐한 장군들 같은 비참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난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그에게 감화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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