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6>
한국전쟁이 가져온 동물수난사
어느 날 난 내가 사는 동굴 부근 숲속에서 부상당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지. 그는 총알이 다리에 깊숙이 박혀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어. 난 그의 윗옷을 이빨로 물어서 질질 끌고 동굴 속으로 데리고 갔지.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 그냥 끌려오더군. 그리고 며칠 동안 난 날마다 먹이를 구해오고 그의 상처를 까끌까끌한 혀로 핥아 주었어. 그도 좀 여유를 찾자 자기 칼로 상처 안에 박힌 총알 파편을 고통을 참으며 스스로 빼내더군.
“참 산에 살다보니 별 신기한 일도 다 겪게 되는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너한테 끌려가면서 차라리 호랑이한테 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아무튼 정말 고맙다. 호랑이가 영물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이구나. 만약 살아서 다시 만난다면 그 땐 꼭 이 은혜를 어떻게든 갚을게.”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상처가 회복되자 곧바로 자기 동료들을 찾아 산속으로 떠났지. 그 후에 그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비행기가 뿌리는 삐라 사진을 보니 그가 이 산속의 빨치산 대장이었나 보더라고. 그가 떠난 후 며칠 후에 이 산에 경찰과 군인들이 대규모로 빨치산을 토벌한다고 들어왔어. 그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을 하고 움직이는 물체들은 사람 동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쏴 죽였지. 일제시대에 이어서 6·25 전쟁의 그 수난을 겪으면서 이 땅에 있는 호랑이, 곰, 표범, 늑대, 여우까지 크고 작은 야생 동물들은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단다. 나도 정말 죽어라고 도망쳐서 이곳 오대산 깊은 골짝이로 겨우 피신하여 이제까지 목숨만 부지한 체 겨우 살아가고 있는 거야.
여기까지 이 호랑이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그의 행적에 관한 것이었다. 한편으론 그럴싸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설마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들기도 했다. 그 후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주로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랑이들이 처한, 전쟁에 폐한 장군들 같은 비참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난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그에게 감화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