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을 개척한 범죄영화

 범죄자와 이를 잡으려는 형사이야기는 한국영화의 단골소재다. 이런 이유로 한국영화는 걸쭉한 범죄영화의 명단을 작성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공공의 적’(2002), ‘살인의 추억’(2003), ‘추격자’(2008), ‘베테랑’(2015) 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빛이 나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을 포함해 수많은 범죄영화들은 형사들이 범죄자를 잡고자 악전고투하는 이야기를 펼쳐왔다.

 그런 점에서 ‘암수살인’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 범죄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마약단속반 형사와 정보제공자로 만난 김형민(김윤석)과 강태오(주지훈)가 칼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데 난데없이 형사들이 들이닥쳐 강태오를 여자친구살해범으로 체포해 버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주인공 범죄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영화를 열고 있다는 말이다.

 다음 전개가 흥미롭다. 감옥에 갇힌 태오는 식사자리를 통해 안면을 튼 형민을 감옥의 접견실에서 만나 자신이 모두 일곱 명을 죽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일곱 명의 사망자명단을 거침없이 작성해 형민에게 건넨다. 이에 형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이 있음을 직감하며 태오와 거래를 해서라도 이를 밝히고자 한다. 그렇게 형사와 살인마의 거래가 성사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확인되는 것은, 태오의 자백이 어느 대목은 맞고 어느 대목은 어긋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태오의 반신반의한 자백을 근간으로 살인사건들을 수사하는 형민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형민은 태오가 정보를 흘린 이유가 다른 노림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형민은 태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것은 물론, 교란 작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진짜 살인 사건’을 파헤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듯 ‘암수살인’은,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며, 추리와 심리전에 집중한다. 형사와 살인마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밀고 당기는 두뇌 싸움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범죄물에서 목격되는 격렬한 몸싸움이나, 그 흔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없다. 그리고 범죄를 수사하는 형민 역시 기존의 범죄영화에서의 형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잠바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는 대신에 정장을 입고 수첩과 펜을 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암수살인’은, 기존의 범죄영화들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암수살인’은, 영화 속에 심어 놓은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차별화를 꾀한다. 그것은 형사인 형민으로부터 기인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 형사로서 열정을 다한 형민에게 감복된다. 그도 그럴 것이 형민은 태오의 꼬임에 놀아나지 않고, 갖은 애를 써서 결국에는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예를 갖추기 때문이다. 형민은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을 세상이 몰라준다면 그것만큼 딱한 것이 없음을 그 누구보다도 헤아릴 줄 아는 인물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형민과 태오가 비교된다. 태오가 인명을 경시하는 살인마라면 형민은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엔딩 장면에서 “어디 있노 니”라고 읊조리는 형민의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또 다른 희생자를 찾고자 하는 독백이자, 형사로서의 직업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살펴보았듯이 ‘암수살인’은, 새로운 범죄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영화다. 형사와 살인마가 머리로 싸우는 범죄영화를 표방한 것도 그렇고, 범죄영화의 익숙한 관습들을 거부한 것도 그렇다. 또한, 악조건 속에서도 형사로서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을 제시한 것도 그렇다. 이렇듯 ‘암수살인’은, 한국범죄영화의 지평을 확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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