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7>

 이제 우리 같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몇 개 안되는 동물원뿐이야. 우리나라 동물원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창경원이 최초지. 일본 놈들 진짜 해도 너무하기도 했지. 세상에 한 나라 임금이 살던 궁궐에 동물감옥을 만들어 놓을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그 당시 나도 가끔 동물원에 갇힌 친구들을 만나러 깜깜한 저녁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창경원 높은 담을 넘기도 했어. 그땐 그곳 창경원 호랑이들도 대부분 이 땅에서 잡힌 토종 호랑이었고, 그래서 내가 아는 녀석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야. 주로 산을 돌아다니다 사람들이 길목에 파 놓은 깊은 함정이나 그물에 잡혀서 생포돼 온 거지. 내가 모르는 어린 호랑이들은 이곳에 잡혀온 어미로부터 낳은 새끼들이었고. 동물원 동물들은 마치 종신형을 선고 받은 죄수들처럼 평생을 좁은 철창 우리 안에서만 지내야 하지.
 
▲잡혀온 동물들이 구경거리로
 
 결혼이나 새끼 낳는 것은 우리 야생에선 정말 비밀스런 행위인데 동물원에서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억지로 해야만 하고. 그래서 자존심 강한 녀석들은 최소한의 먹는 것 이외에 일체의 다른 생활은 모두 포기해 버린단다. 암컷들은 새끼를 우연히 낳는다 해도 아예 돌볼 생각을 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둬 버리는 일도 다반사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온 나이지만 걔네들 형편을 보면 정말 사람들이 미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구나.

 그 후로 자유로이 지내는 내가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고 또 내 발자국을 보고 부쩍 감시가 심해져 창경원에는 더 이상 찾아가지 못했어. 지금은 아예 이 땅에 전시할 야생동물이 하나도 없으니 모두 아프리카나 아마존 같은 곳에서 수입해 온다는 구나. 가끔은 ‘바다 건너 그 먼데서 오는 야생 동물들이 이곳의 기후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해.

 아무튼 동물원은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끔직한 곳이지만, 또 그렇게 오랫동안 동물원에서 길들여진 동물들을 설령 거친 야생에 풀어 놓은들 제대로 살아 나갈 수나 있겠니?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천천히 동물원들을 하나하나 없애버리고, 대신 우리 야생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넓은 터전을 좀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게 내가 인간들에게 바라는 유일한 한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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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키워지는 호랑이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조련용으로 키워지는 호랑이들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걔네들은 태어나자마자 무조건 어미한테서 떼어져 사람이나 돼지가 그들을 젖을 먹여 키운다나 봐. 그래야 나중에 커서도 위험하지 않고 성격도 얌전해진다는 거지. 한 마디로 야생성을 모두 없애버린 고양이처럼 만드는 거지. 사람들은 그들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었다고 별 짓들을 다하나 봐. 그게 다 그 놈의 돈 때문이야. 사람들도 돈이라는 게 나오기 전까진 이렇게 동물들을 막 대하진 않았거든. 어느 정도 영역을 존중해 주고 서로 조심하면서 살았었는데 말이야.

 조련용 호랑이들은 그냥 키워 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어느 정도 크면 본격적인 훈련을 하게 되는데, 그 전에 미리 뾰족한 송곳니도 평평하게 자르고 발톱도 모두 뽑힌다고 들었어. 그러고 나서는 엄청나게 매를 맞으면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거지. 훈련 받는 내용은 그리 어려운건 아닐 것 같아. 원래 점프 잘하고 나무를 잘 타는 호랑이가 불타는 링 같은 걸 통과하고 외줄 타기 같은 걸 하는 것은 누워서 식는 고기 먹기지 뭐. 대부분 매를 맞는 경우는 훈련을 거부하거나 조련사에게 이빨을 보였을 때야.

 간혹 그들 중에도 정신을 차린 녀석들이 있어서 반항을 할 때도 있나봐. 그럴 땐 걔들을 우선 독방에다 가두고 두고, 그래도 계속 반항하면 동물원 같은 곳으로 아예 팔아버린데. 그러나 동물원에 가면 이빨로 잘리고 발톱도 없는 이들 조련용 호랑이들은 대부분 다른 호랑이들의 기세에 눌려 오래 살지 못하지. 야생동물이나 사람들 세계에서 약자들은 그리 잘 보호받지 못하는 게 또한 현실이거든.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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