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00년을 산 백두산 호랑이<9·끝>

 나도 이제 거의 5000살이 다 되어가니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렇게 숨어 지내는 삶도 정말 지겨워 지기 시작했어. 차라리 난 우리를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인간들과 한판 싸움이라도 벌여서 명예롭게 전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아. 물론 너같이 선량한 인간들까지 해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도록 해. 지금까지 내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들어 준 것 만해도 나는 너에게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5000년간 비밀을 간직한 채 산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답답한 일인지 넌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대나무 밭에 가서 외친 왕의 이발사의 답답한 심정을 나는 너무나 잘 알 것 같아. 아무튼 정말 고맙고 우린 아마도 다시는 보기 힘들겠지만 너 한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으면 난 더 이상 소원이 없겠어. 그러면 사람들도 아마 이 땅의 야생동물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차츰 깨닫게 될 거야.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지. 아래서 걱정하겠다. 그럼 이제 그만 내려 가보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다 끝마친 호랑이는 제가 먼저 일어나서 큰 멧돼지를 입에 물고 유유히 오대산 쪽으로 사라져 갔다. 난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제야 산에서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서 정신 차리고 보니 그 날 남은 하루 동안 도대체 내가 겪은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다음날 일찍 호랑이를 만난 바로 그 장소로 다시 확인하러 가 보았다. 그 곳엔 여전히 눈 위에 멧돼지 핏자국이 군데군데 널려 있고 커다란 호랑이 발자국 같은 것이 희미하게 오대산 쪽으로 일직선으로 찍혀 있는 게 보였다. 그것만 보고도 ‘어제 일은 분명 꿈이 아니었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난 그 호랑이와의 약속 -물론 일방적인 호랑이의 부탁이긴 했지만 -을 꼭 지키고 싶어 그에게 들을 이야기를 까먹지 않기 위해 우선 이 글을 쓴다.

 난 오늘도 변함없이 산책을 나간다. 산책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 호랑이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이다. 만나서 친구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가 만난 위대한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너무 초라해서 감히 그런 말을 꺼내지는 못하겠다. 대신 이번에는 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고 싶다.

 “호랑아! 난 네가 쬐금 무섭긴 하지만 너같이 멋진 동물들이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일은 나도 정말 싫어. 나도 앞으로 너희들을 보호하는 일에 꼭 앞장 설 거야.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라고~.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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