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의 지난한 디아스포라

 윤재호 감독은 분단의 현실을 영화로 고민하는 감독이다. 중국에 있는 아들을 만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조선족 여인의 이야기를 기록한 ‘약속’은 2011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분단 그리고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히치하이커’와 ‘마담B’는 칸영화제가 각별하게 챙기기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 윤재호 감독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뷰티풀 데이즈’ 역시 앞 선 작업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마담B’는 ‘뷰티풀 데이즈’의 근간이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마담B’는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월경한 북한 여성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로, 국가를 넘나들고 불법을 자행하며 끈질기게 살아남는 여성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뷰티풀 데이즈’에서 만날 수 있는 엄마(이나영)역시 인생행로가 만만치 않다. 영화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 젠첸(장동윤)이 가족을 뒤로 하고 떠나버린 엄마를 찾아 서울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14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술집을 운영하며 건달처럼 보이는 사내와 살고 있다. 이내 실망한 젠첸은 엄마를 뒤로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러나 헤어질 때 엄마가 챙겨준 선물꾸러미 속에서 일기장을 발견하고 젠첸은 과거의 엄마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2017년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2003년 그리고 1997년에 엄마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역순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정리되어지는 엄마의 과거는 어린 나이에 탈북해서 나이 많은 중국 조선족의 아내가 되어 살다가, 브로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집을 전전하다가 마약을 운반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등 굴곡이 많은 삶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여성의 지난한 인생유전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방법론에서 찾아진다. 탈북여성의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감독이 마음만 먹는다면 박진감 있는 드라마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엄마의 인생유전을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다. 삶의 국면마다 세상의 위험에 노출된 엄마의 여정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그저 담담하게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윤재호 감독은 장면을 연출함에 있어서 자극적인 방식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름지기 험난한 인생을 해쳐나가는 여인을 묘사함에 있어, 영화가 악다구니로 일관하는 강렬한 여성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영화 속의 엄마는 외유내강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많이 힘들지만 겉으로 발악하지 않고 속으로 울음 우는 것이다.

 여기에다 극 중의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역시 절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뷰티풀 데이즈’는 대사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미장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무드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이 영화는 성숙함을 견지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2017년으로부터 5년 후를 보여준다. 네 명의 인물이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다. 이때 영화를 쭉 따라왔던 관객들은 알게 된다. 이 가족은 핏줄로 엮인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의 미장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이때의 카메라는 새롭게 구성된 가족 구성원을 따뜻한 정서로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여성의 지난한 디아스포라를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지긋이 관찰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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